국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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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73년전에 「가톨릭」소농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농업경제학을 공부하다 1차 대전에는 포병장교로 출전, 전후에는 농촌조직운동을 벌이고 중앙당원으로서 「프러샤」의회에 들어가 정치활동을 하던 중, 「나찌」가 득세하고 나서는 두 번이나 투옥당한 것이 그였다. 그리고 2차 대전이 끝나면서는 기민당에 가입, 북「라인·베스트관련」주의 식량상겸 농상을 거쳐 연방 식량상을 지내다 59년에 「호이스」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되어 오늘날에 이르는 경력의 주인공이 이번에 방한하는 「뤼프케」씨다.
의무감이 강하면서 과묵한 그는 경제문제에도 꽤 밝을 것임은 그의 과거가 충분히 말해준다.
그러나 그가 이번에 어느 정도의 선물을 가져올 것인지는 별 문제. 우리나라와 달라서 서독대통령은 정치권력이 거의 없으며 지난날 「아데나워」가 보여주듯 실권은 수상이 쥐고 있기 때문. 64년 12월의 박 대통령의 방한에 대한 국가원수로서의 예방 정도로 생각해두는 것이 헛된 기대를 안 가지는데 상책일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보면 엄청난 환영비가 걱정되기도 한다. 부산서까지의 영접비를 합치면 약1억5천만원. 「아치」·현판·국기·「포스터」·사진 등등 화려하다. 여기에다 기념우표가 찍혀 나오고 기념담배도 신탄진 외에 백조·금잔디에 까지 사진이 붙게 되니 이번에는 시골구석까지 널리 알려지게 된다. 56년에 시작되어 심심치 않게 두들겨 맞으면서 겨우 준공하여 첫 손님으로 「뤼프케」대통령을 맞이하는 영빈관은 일본 것에 비해도 훨씬 화려하고 아담하며 미국의 「브레어·하우스」따위는 축에 들지도 못할 정도.
그러나 외교는 눈앞의 실리만 보아서는 안 되는지라, 공손한 대접을 해서 나쁠 것은 없다. 더욱이 「유럽」의 국가원수로서는 처음 방한이기도 하기 때문에. 다만 『퇴색한 간판을 손질 하라』『의복을 깨끗하게, 걸음을 바르게』할 것까지 시가 요구하는 것은 좀 지나치지 않을 까. 그는 있는 그대로를 보고 싶은 것이고 우리도 허식을 차릴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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