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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희망의 계단 - 졸업의 달 2월(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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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졸업 즉 시업>
「청운의 꿈」이 대지를 누빈다.
새 학사의 물결 2만8천. 해방 후 약50만명(문교부추산)의 학사가 배출됐다.
믿음직한 동량이기에 온 겨레가 다같이 갈채를 보낸다.
「축! 졸업식」. 견습 사회인으로 첫발을 내디디는 이날을 미국사람들은 「졸업」이 아닌 「시업」이라 이름했다. 상아탑 안의 훈기를 떠나 거센 사회계절풍에 부딪칠 이 순간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대학에 기대는 단계』가 바로 오늘이란 점에서 새 학사의 어깨는 한결 무겁다.
단순한 기초적 시업이 아니라 도약의 밑거름인 것이다. 『대학이 사회로부터 망각되어 있던 해방직후의 1단계』가 지나갔고 『대학이 병역 보류 등으로 사회에 의존하던 제2단계』도 지났다.
선진외국에서는 벌써 도달된 희망의 제3단계가 바야흐로 우리 눈앞에 펼쳐지려는 찰나다.
하지만 아직도 대학교육 주변에는 비판의 「이슈」들이 수두룩하다. 『대학인구의 과잉이다』『사회의 수요를 무시한 고등유민 배출이다』『산업구조에 부적한 학계 체계다』하여 말썽인데다가 사립대학의 분규나 정원 초과모집이 꼬리를 물고 있다.
문교부 당국은 이 같은 현실을 『종래의 「주먹구구」식 대학인가 남발로 특색없는 대학을 난립시켰기 때문』이라고 자가비판하고 있다.

<양적인 팽창>
해방직후부터 최근까지 대학의 생태는 무턱 댄 양적 팽창 일변도였으니까 지극히 당연한 일.
해방 당시엔 1개뿐이던 4년제 대학이 지금은 69개교로, 그리고 대학생수도 7천8백19명에서 12만3천1백50명으로 16배나 늘었다. 그러나 교수는 해방 당시의 1천4백90명에서 6천4백79명으로 소걸음, 4.3배의 증가율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는 법정정원의 43.2%에 해당하는 숫자로 교수 1명에 학생19.5명이 매달리는 셈(일본=9.6명 자유중국=13.4명 영국=8.9명).

<질적인 저하>
이같이 겉으로만 비대해진 대학병리는 해방후의 갑작스런 교육열의·산업의 취약성·학교의 기업화·병역보류의 특전등에 기인한 것이며 여기다가 불건전한 사학재정·무시된 학생적성·학교 내와 학교간의 「몬로」주의가 곁들여 보잘 것 없는 질적 저하 현상을 초래했다. 재단 전입금이 연간 학교 운영비의 평균14.7%밖에 안되어 나머지85.3%는 학부형과 학생호주머니에 의존하는 사립대학의 실태도 간신히(?) 이룩한 오늘의 이야기. 당초에는 모두 적수공권이었으니까... 지금도 S여대등 수 개교는 계속되는 분규로 재단 전입금이 「제로」다.

<취직상황>
65학년도의 대학졸업생 취직상황은 66년4월1일 현재 47.6%(군대 입대자 제외)로, 64학년도의 37.6%에 비해 전체적으로 10%가 늘었다. 학계별로 사범계가 84.4%로 가장 높고, 그 다음이 체육학계(72.1%) 의약학계(60.3%) 공학계(43.2%) 해양·수산학계(43.1%)의 순이다. 그런데 이를 산업별로 보면 1차산업1.5%, 2차산업14%, 3차산업83.5%(한국생산성 본부집계)로 생산성이 덜한 곳에 대학인력이 쏠렸다.

<도시집중>
특히 3차 산업중에서도 「서비스」업과 공무는 각각31%, 21%의 높은 비율을 차지하여 근무지 자체가 도시 집중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지역별 교육기관 배치현황 역시 도시로 너무 편중된 느낌. 의무 교육을 제외한 각급 학교의 대부분이 도시에 몰려 있다. 그중 4년제 대학은 69개교 가운데 반이 넘는 38개 대학이 수도서울에 집중해 있고 나머지 31개 대학이 지방곳곳에 산재해 있는 실정이다.
학생수로 따져봐도 전체의 62%가 서울에 있고, 나머지로 경북에 9.5%, 부산에 7.8%가 있으며 경남은 인구에 비해 극히 적은 1.6%를 차지하고 있는 정도다.

<교육비 부담>
시골의 과다한 교육비부담문제가 여기서 제기된다.
지난 65학년도의 경우만 봐도 지방출신 고교생의 서울시내 대학 응시율이 전체의 50%이상(5만9천여명)이며 이중 1만여명이 전·후기대학에 합격하여 서울시내 대학 입학정원 1만7천2백65명의 58%를 차지했으니까 말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한 가구 교육비 부담률은 총소득의 12.8%. 공·사교육비의 GNP에 대한 비율이 5.7%로 선진국의 수준. 국민소득은 낮은데도 지나친 교육비를 물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여기에 곁들인 한가지 흥미있는 현상은 교육단계별로 본 고등교육비의 비중이다. 60년에 「초등80%, 중등16%, 고등4%」이던 교육단계별 교육비 배분률이 64년에는 「64.8%, 22.2%, 13%」로, 65년에는 「53%, 32%, 15%」로 변동했다(일본「42%, 45%, 13%」, 미국「43%, 32%, 25%」, 서독「52%, 38%, 10%」).
이는 초등교육비에 비해 중등·대학교육비가 는 것으로 선진국의 추세를 따르고 있는 증거다.

<대학 정원령>
『국민의 대학교육비 부담을 줄이고, 인재수급의 불균형을 시정한다』는 등의 명목으로 문교부는 「대학 정원령」(65년12월22일)을 제정했다. 학사 배출을 인력 수급계획에 맞추어 보려는 의도가 더 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정원령은 인력 적정 수급체제를 확립하려는 기초조사를 토대로 한 것이 아니라, 제정당시의 「주먹구구」식 정원을 그대로 법제화한 것이어서 학교·학계간의 불균형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런데 교육 인구의 구성비를 보면 「초등86%, 중등13%, 고등1%」로, 선진 미국(60%, 33%, 8%)이나 일본(56%, 41%, 3%), 서독(74%, 23%, 3%)에 비해 아직 중등·고등은 확충을 요하는 단계다. 결코 『대학생이 많지는 않다』는 지론이 성립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인구는 대학 적령인구에 비해 5.6%로 미국의 38.9%, 일본의 15%, 불란서의 10.5%, 보다 낮으며 영국(60년도)과는 같은 비율이다.
다만 국민소득을 따지자니까 문제가 된다. 『국민소득은 세계에서 18번째인데, 대학인구는 미국·「필리핀」·「캐나다」·일본에 다음가는 5번째』라는 것이 문교부가 내세우는 정원령 엄수의 이유다. 그러나 한 교육전문가는 정부의 이 같은 주장이 『말로는 교육이 백년대계라면서도 실제로는 몇 년 앞도 못 보는 근시안의 소치』라고 나무란다.
『인력이 남아 돈다면서 노동 인력만 수출하려 들지 비싼 지식인력의 수출은 왜 생각해보지 않느냐?』는 것이다. 『도읍 교육을 사회가 필요로 하는 만큼만 한다는 사고방식이 어디서 나왔으며 인재 수요량의 산출근거가 어느 정도 정확하냐?』는 항변도 있다. 『대학은 대학 그대로의 목적을 지닌 것이지 결코 1차적 생산수단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모름지기 대학의 운영은 선진외국의 관례대로 대학당국에 맡겨라』는 주장이 요지다.
입시위주의 중등 교육과 개성지도의 소홀로 전공을 잘못 선택한 대학생이 전체 학생의 39%(문교부집계)나 된다니까 우선 이런 막대한 교육의 낭비를 시정하는 등의 학교 경영합리화로 말이다. <글 김진규 사진 김정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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