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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전범 처형자의 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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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동경=강범석 특파원】제2차 대전의 전범자로 처형된 한국·대만 출신자 49명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위령비가 오는 4월 초순 「교도」시 「히가시야마」 「고다이지」 경내에 세워지게 되었다. 이 위령비의 건립을 위해 사뭇 애써온 일본 문화 연합회 대표 「고미야마·노보루」(53·동경도 세전곡구 송원정 1의 13의 9)씨는 『일본 때문에 억울한 목숨을 잃은 사람의 명복을 비는 것은 바로 일본 사람의 의무』라는 신념으로 10여 년 동안 이 사업을 추진해 왔다.
1950년이래 「전범 역류자 해방운동 협력회」를 조직, 전범자들의 조기 석방운동을 벌여왔던 「고미야마」씨는 57년도 의외에도 전범 처형자들 중에 한국인 출신자가 23명, 대만 출신자가 26명이나 끼어 있음을 알아내고 이들 49명의 위패를 만들어 그해 4월 1일 「교도시」의 영산관음에 안치했다. 이때부터 그는 다시 위령비의 건립을 기도했다. 그는 처형자의신원과 이력을 조사하고 그들이 남긴 유서를 모았다.
위령비의 대좌에는 그 자신 「마가반야파라밀다심경」의 사경 1백권을 헌납키로 결심, 2년째 걸려 사경을 모두 썼다. 이를 감은 권지는 무려 1백20「미터」. 49명의 각 위에는 될 수 있는 한 각자의 신분에 따라 불교·유교·기독교 그 밖의 경문·성구 혹은 자작시·헌영가를 구절마다 필사로 새겨 명복을 비는 마음을 한층 간절하게 했다.
이들 중 몇몇은 그들이 남긴 유서에서 전쟁의 비극, 터질 듯한 민족의 울분, 저주스러운 인간의 슬픔 등을 말해 주고 있어 눈물겨웠다.
1947년 2월 25일 아침 9시, 「싱가포르·창기」 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사라진 조문상(당시 26세·개성시)씨의 경우는 사형 집행 2분전까지 절박한 운명의 수기를 썼음이 드러나고 있다.
『전략…감방 안에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그러면서도 살아남아 있는 사람들이 부르는 「올드·랭·자인」의 노래 소리가 들린다. 「이 세상엔 미련 없다.」-. 그렇게 말한 사람들이 우습다. 영혼이라도 어딘가 인간 세상에 떠돌아 붙어 다녔으면 좋겠다. 아, 살고 싶다. 그 어느 날, 백운대의 암벽에 새겨 놓은 내 이름이 지금도 남아 있겠지. 그럼 부모님들, 안녕.』
조씨는 그렇게도 살기를 바라면서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조씨와 같은 시간에 처형된 김장록씨의 경우는 거의 영탄에 가까왔다.
『저 세상에는 정말 한국인이라든가 일본인이라든가 하는 구별은 없겠지.』- 그러면서도 그는 설움 받던 민족의 울분을 씹으며 사라져 간 것.
『특히 한국·대만 출신자가 전범자로 처형된 것은 기막힌 역사의 과오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일본인으로서는 그러한 영혼을 위로하는 것이 당연한 일 입지요.』
위령비 건립의 마지막 손질을 재촉하는 「고미야마」씨에게는 근엄할이 만큼 기도하는 마음이 가득 찬 것 같았다.
그는 『위령비 제막식에 유족들이 참가해 줬으면 얼마나 기쁘겠느냐?』고 말했다.

<처형된 한국인 명단>
전범으로 처형된 한국출신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괄호안은 처형 연월일)
▲김영주(46.7.30) ▲백천서(46.9.12) ▲홍사익(46.9.26) ▲강태협(46.11.22) ▲김귀호(46.11.22) ▲장수업(46.11.22) ▲김규언(47.1.9) ▲천광린(47.1.21) ▲김택진(47.1.21) ▲유삼천(47.2.4) ▲박영조(47.2.25) ▲김장녹(47.2.25) ▲조문상(47.2.25) ▲조윤태(47.3.23) ▲차균복(47.5.3) ▲박성근(47.5.5) ▲유천광웅(47.5.25) ▲박형준(47.6.12) ▲임영준(47.7.18) ▲변종윤(47.9.5) ▲박준식(47.9.5) ▲최창선(47.9.5) ▲김수인(48.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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