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새 바람이 안 느껴진다는 박근혜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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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오늘로 한 달이 지났다. 하지만 국민은 아직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싱크탱크였던 국가미래연구원의 김광두(서강대 명예교수) 원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아직까지 변화의 바람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새 정부가 무슨 가치를 추구하는지 안 보인다”고도 했다. 박 대통령에게 정책 조언을 해주던 그의 입에서 이런 지적이 나올 정도면 일반 국민의 평가는 어떻겠나.

 대통령이 바뀌고, 정부가 새로 들어서면 국민은 뭔가 새 바람을 기대하곤 한다. 새 정부 주역들의 의욕이 정책활동에 반영되고, 그에 따른 실질적 변화가 국민 생활에 전파되면 나라 전체가 변화의 바람에 들썩이는 법이다. 이게 좋은 방향으로 향하면 범국민적 엔도르핀이 돌기도 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지난 한 달 동안 뭘 했나. 정부조직법 처리하느라, 인사 잡음 수습하느라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나.

 근본 원인은 정치력과 소통의 부족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주 마무리된 정부조직법 개정 절차가 대표적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결국 야당에 줄 것 다 주면서도 시간만 질질 끌었다. 결과적으론 대통령이 정치력의 한계를 보여주고 말았다. 정부조직 개편에 힘을 빼느라 갓 출범한 정부 특유의 돌파력과 추진력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인사 실패는 더 큰 문제다. 벌써 국무총리, 장·차관 후보자 등 11명이나 낙마했다. 불통 인사가 빚은 참사다. 오죽하면 야당에서 ‘낙마자 축구팀’이라도 하나 만들 만하다는 비아냥이 나오는가. 또 박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유세에서 누누이 강조하던 대통합의 메시지는 도대체 어느 인사에 담겨 있는가. 그뿐 아니다. 청와대에는 정무 능력 떨어지는 보좌진, 전달력에 문제 있는 대변인들이 포진하고 있다. 이 사람 참 잘 썼네 하는 칭송을 듣는 인사가 과연 몇이나 되나.

 박 대통령 자신은 사심 없이 원칙을 밀고 나간다지만, 국민이 실제 그렇게 평가하고 신뢰하느냐 하는 건 별개 문제다. 대통령 혼자 원칙에 충실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국민이 그에 납득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납득의 기반 위에서 국민적 에너지를 한데 모으는 것이 곧 소통의 정치다. 그런 기준에서 보면 새 정부 한 달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이는 박 대통령에 대한 여론조사 지지율이 계속 하락하고 있는 데도 잘 반영돼 있다.

 국민의 인내심은 그리 강하지 않다. 가랑비에 옷 젖듯 조그마한 실망이 누적되면 머잖아 집단적 불만이 표출될 위험이 있다. 이때 복지·노동 등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추진해야 할 많은 정책이 힘을 받기 어려워진다. 또 지금 안보 정세나 경제 상황 등 우리를 둘러싼 여건 가운데 어느 하나 녹록한 게 없다. 불철주야 일하고 또 일해도 모자랄 판에 새 정부는 한 달간 불완전 연소 상태를 이어왔다. 앞으로 박근혜 정부는 초기의 실패를 만회하고도 남을 결과물을 내놔야 한다. 그러려면 첫째도 소통, 둘째도 소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