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진솔한 집 짓기 … 터를 읽고 그 안에 무늬를 담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15호 08면

1 이토 도요가 설계한 일본 하치오지 다마미술대학 도서관(2007). 2 야쓰시로 시립박물관(1991). 3 대만 가오슝에서 열린 ‘2009 월드게임’ 메인 스타디움(2009).
이토 도요 일제 강점기 일본과 조선을 오가며 도자기 사업을 하던 부친의 영향으로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43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대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71년 자신의 사무소 ‘어반 로보트(URBOT)’를 설립한 후 79년 ‘도요 이토 건축설계사무소’로 명칭을 바꿔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가볍고 투명한 느낌의 건축’을 정착시켰다는 평을 듣는다. 대표작으로 ‘요코하마 바람의 탑’(1986), ‘야쓰시로 시립박물관’(1991), ‘오데트의 돔’(1997), ‘센다이 미디어테크’(2001), ‘도쿄 오모테산도 토즈(TOD’S) 빌딩’(2004), ‘다마 미술대학 도서관’(2007) 등이 있다. 2012년 제13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서 일본관 커미셔너를 맡아 최고의 국가관 전시에 수여되는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Pritzker)상의 올해 수상자로 일본 건축가 이토 도요(伊東豊雄·72·사진)가 지난 18일 선정됐다. 최근 4년 사이 3년에 걸쳐 이어지는 아시아 건축가들의 쾌거다.
1979년 시작돼 올해까지 35회를 치르는 동안 2인 공동 수상 1회, 한 사무소 2인 공동 대표 수상 2회를 포함해 모두 38명의 건축가가 영예의 이름을 올렸다. 국가별로 보면 이 상을 제정한 주최국 격인 미국에서 8명의 건축가가 수상해 가장 많이 배출한 나라가 됐고, 5회에 걸쳐 6명의 건축가가 수상한 일본이 그 뒤를 잇고 있다.
그런데 수상자 현황을 건축가의 출생 국적으로 따져보면 일본이 미국을 제치고 최다 수상국이 된다. 미국은 수상자 8명 가운데 3명(케빈 로치, 프랭크 게리, 아이엠페이)이 다른 나라 태생 건축가들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수치로만 보더라도 일본이 건축문화 강국임을 증명한 셈이다. 그렇다면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건축계 노벨상 ‘프리츠커상’ 받은 이토 도요

올해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이토 도요 외에 이 상을 받은 일본 건축가는 다섯 명이다. 동양 건축가로서는 이른 시기인 9회 때 이 상을 받은 단게 겐조(丹下健三, 1987년)를 비롯해 미국 유학파인 마키 후미히코(槇文彦, 1993년), 고졸 복서 출신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1995년), 역대 수상자 중 두 명밖에 없는 여성 건축가 중 한 명인 세지마 가즈요(妹島和世)와 그녀의 파트너 건축가 니시자와 류에(西沢立衛, 2010년 공동 수상)가 그들이다.
일본 건축이 이처럼 높은 국제적 인정을 받게 된 것은 그들의 건축문화가 국제적인 정서와 소통을 이룰 만큼 성숙해 있음을 의미한다. 상을 제정해 시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80년대부터 꾸준히 수상자가 나온 것이 이에 대한 방증이다.
그렇다면 그 성숙함이란 어떤 것을 이르는 것일까? 문화적 성숙함은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일본은 이미 근대 시기부터 역동적으로 서양 문화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를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자신들이 지닌 문화적 정체성을 통해 해석하고 자신들의 문화로 융합하는 과정을 거쳤다. 특히 건축 문화는 20세기 초부터 서구와 활발한 교류를 통해 자기 문화를 서구에 전파하는 한편 서구를 수용하고 실험하며 자신들의 문화로 진화시키는 작업을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실현시켜 왔다. 말하자면 일본의 일본다움은 그들만의 특수 상황이 아니라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성숙한 문화적 자산으로, 사회 전반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4, 5 영국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파빌리온(2002).

역대 수상자 38명 중 일본인 6명으로 1위
이토 도요가 올해 수상자로 선정된 것은 사실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는 오래 전부터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국내외에서 많은 화제작과 수작을 내왔다.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서도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다. 지난해에는 일본 국가관 커미셔너를 맡아 전시 기획을 총괄해 국가관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2002년에는 작가로 참여해 역시 황금사자상을 받은 바 있다.
프리츠커상을 몇 년 먼저 받은 세지마 가즈요와 니시자와 류에는 과거 이토 도요 사무실에서 일한 적이 있어 그로부터 영향을 직접 받고 성장해온 건축가들이다. 실제로 건축을 대하는 태도나 감각이 이들 간에 공유되고 있음이 작품의 면면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6, 7/ 센다이 미디어테크(2000). 8, 9 도쿄 시부야 토즈(TOD’S) 오모테산도 빌딩(2004).

투명성 강조한 공간, 센다이 미디어테크
프리츠커상은 건축가에게 주는 상이지 작품에게 주는 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수상자를 발표하면서 대표작이 함께 거론되는 게 일반적인데 이번에는 포괄적인 설명으로 대신했다. 굳이 심사위원들의 코멘트를 단서로 삼자면 이토 도요의 대표작으론 ‘모두를 위한 집’(House-for-All)을 우선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의 전시 주제가 바로 그것이었고 여러 경로를 통해 잘 알려진 작업이다. 이 작업은 이토 도요만이 아니라 여러 건축가들이 뜻을 함께 하며 이뤄낸 것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몇 해 전 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피해를 극복하는 수많은 노력 가운데 건축가들의 참여로 조성한 보금자리 프로젝트다. 프리츠커상 심사위원이 주목한 것도 바로 이 같은 건축가의 사회적 참여와 소통이었다.
센다이 미디어테크는 수많은 대표작 가운데 그의 면모를 가장 극명하게 확인시켜 준다. 투명성을 강조하고 있는 공간의 솔직함, 여러 기능을 복합적이며 개별적으로 소통할 수 있게 한 공간 질서, 합목적성을 드러내는 입면과 평면의 자유로움을 통해 담아낸 도시의 성숙한 표정…. 투명한 유리면 외벽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독특한 기둥 구조체의 실험적 적용이나 각층의 기능에 따라 디자인을 달리한 공간의 배려는 구조적·기능적·미학적 해결을 위한 건축의 근원적 접근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는 그가 지닌 건축 태도, 즉 터를 읽고 그 안에 무늬를 담는 진솔함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진정성이 도시를 쓸어간 강진에도 건물이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게 만든 힘으로 작용한 셈이다.
도쿄에 있는 명품 브랜드 토즈(TOD’S) 오모테산도 빌딩은 그의 ‘터’ 읽기를 잘 보여준다. 안도 다다오의 오모테산도 쇼핑몰과 세지마 가즈요가 설계한 매장이 주변에 함께 모여 있어 더욱 독특함을 뽐내고 있는 가로 풍경을 이토 도요는 매우 간결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입면에 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것처럼 구조와 표피를 일체화시키면서 내부공간을 자유롭게 하는 독창적 디자인으로 주변과 대화를 시도했다.
때때로 그의 건축 작업은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건축 형태나 재료, 공법이 그때그때 달라 즉흥적 감성의 유희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늘 사회와 더불어 존재하며 새로워지기를 바라는 건축가의 태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매우 다양한 형태적 어휘를 구사하고 있는 그의 작품들이 품고 있는 바탕은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건축물이 그 터에 서 있게 되는 사회적 당위와 존재 이유를 합당하게 하는 합목적적인 무늬를 담아낼 수 있는지에 늘 주목한다. 그래서 건축을 통해 사회의 성숙도를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접근이다.

10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제주도 피닉스 아일랜드의 명상센터 ‘지니어스 로사이’(2008). 11 세지마 가즈요·니시자와 류에가 공동작업한 나오시마 페리 터미널(2006). 12 마키 후미히코의 도쿄 스파이럴 빌딩(1985).

건축은 사회문화적 지혜가 축적된 결과
공동체의 공간환경을 다루는 건축은 사회문화적 배경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고 볼 때 우리 근현대사의 흐름 속 통치 이데올로기와 자본을 등에 업은 개발 위주의 사회 풍토는 사회 전반의 순리적인 성숙을 가로막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우리 건축가들도 개개의 면모를 보면 선진화된 외국 건축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성숙함을 지니고 있다고 감히 평할 수 있다. 비단 건축에 놓인 문제만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이런 사회 구조 안에서 건축가 개인의 역량과 기교가 한국의 건축문화를 끌어올리는 동력이 되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오면 으레 문제를 남 탓으로만 돌리는 무책임함을 거론하게 마련이다. 물론이다. 이를 극복해야 하는 것도 건축가가 떠안아야 할 몫이다. 아니, 우리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다. 그러니 보다 성숙한 사회 환경을 위해서는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프리츠커상이 국가별 경쟁으로 우승자를 가리는 운동경기나 기능대회가 아니니 수상자가 어느 나라 출신이라는 것이 그리 중요한 게 아님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이런 문제를 거론하면 괜한 피해의식이나 열등감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일본과 비교하는 경우에는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일본이나 중국은 프리츠커상 수상자를 배출했는데 한국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고 자괴감에 빠지기에 앞서 우리 각자가 건축에 대한 생각을 얼마나 진솔하게 하면서 살아왔는지 자문해볼 일이다.
우선 건축을 재산증식의 절대적 수단으로 인식하는 대신 가장 소중한 작은 사회요 삶의 지혜가 담긴 장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있는가. 이런 정신, 의식이 보편적 언어로 일상 안에서 편하게 소통되고 공유될 수 있어야 사회의 성숙을 이야기할 수 있다. 건축은 단시간에 즉흥적으로 결정짓는 기교에서 나오는 결과물이 아니다. 건축이 완성되기까지는 기술과 공학뿐 아니라 그 안에서 이뤄질 삶과 그 건축이 이웃하는 환경에 대한 지혜가 담겨야 하기 때문이다. 삶의 지혜는 오랜 시간을 두고 성숙해지고 농익어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일본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사회 공동체와 더불어 성숙한 인간환경을 실험해 왔다. 작은 마을을 개발하는 데에도 주민 의견이 우선 고려되고 개발주체와 주민 사이의 골이 깊을 때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이견을 좁히는 지혜를 발휘해 왔다. 도시개발, 역사문화장소 등의 문제를 해결할 때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사회적 소통이 성숙한 건축문화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는 어쩌면 자존적 주체의식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예컨대 나 혹은 우리다움의 문화적 정체성에 주목하는 건축가의 정신문화에 대한 시각을 이르는 말이다. ‘그들다움’으로 부를 수 있을 문화적 정체성을 일본의 현대건축에서 발견하는 일은 우리의 시각으로도 그리 어렵지 않음을 우리는 인정한다. 그러면서 정작 우리는 우리네 정서에 오랫동안 흐르고 있는 우리다움에 대한 의식을 이 시대의 문화적 자산으로 공유하는 데엔 소홀했다.
정체성은 정신문화의 성숙함을 지탱하는 동력이며, 국제사회에서 우리다움을 소통하는 지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네 역사문화적 자산이 이 시대에도 함께하는 동시대성의 가치를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옛 것의 재현이나 차용의 박제화된 수단이 아니라 시대를 거듭하며 새롭게 진화하는 우리다움의 바탕이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혁신과 진화를 용기 있게 말하는 이토 도요의 건강한 건축가 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