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청와대의 검증 시스템, 근본적 수술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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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강원도 건설업자의 성접대 의혹에 휘말린 김학의 법무부 차관이 어제 사표를 냈다. 임명된 지 8일 만이다. 그는 자신을 향한 의혹을 완강히 부인하면서도 언론에 실명이 거론되자 부담을 느끼고 물러난 듯하다.

 진상은 수사로 밝혀지겠지만, 의혹에 오른 그를 법무부 차관에 기용하기까지 청와대의 인사 검증 시스템은 다른 차원의 문제를 드러낸다. 다른 부처도 아닌 사정당국의 고위 간부이기에 더 그렇다.

 성접대 의혹에 대한 경찰의 내사는 차관 인사 전에 이뤄졌다. 또 청와대 민정라인이 성접대 소문을 접한 게 2월 말이었다. 민정라인은 즉시 검찰과 경찰에 확인작업을 했고, 당사자의 부인과 경찰의 설명을 토대로 ‘문제없다’고 결론 내렸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 초유의 성접대 의혹에 사정당국의 고위 간부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니다. 무슨 연예인의 스캔들처럼 며칠 와글와글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자칫 청와대와 사정당국의 권위와 신뢰에 큰 흠집을 남길 수도 있는 사안이다. 청와대가 이를 문제없다고 봤다면 너무 안일한 판단이다.

 검증이 허술했다는 지적에 청와대의 입인 김행 대변인은 어제 “본인에게 다 확인했다. 그런데 아니라는데 어떻게 하겠나”라고 했다. 그럼 청와대 민정라인은 뭐하는 곳인가. 본인에게 묻고 끝내는 게 검증인가. 지금까지 청와대는 공직자 인사 검증을 그리도 느슨하고 허술하게 했나. 언론이 먼저 의혹을 제기할 때까지 청와대는 뭘 검증했다는 건가.

 더구나 김 차관의 사퇴에 대해 청와대는 책임지려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대변인 입을 통해 제3자처럼 논평만 하고 말았다. 사표는 절차에 따라 처리될 것이고, 이에 대해 청와대가 더 언급할 건 없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 쏠린 국민의 시선은 범상치 않다. 단순한 관음증이나 호기심 탓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힘 있고 돈 있는 유력층이 어떻게 서로 유착돼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수사 결과에 따라선 국민적 공분을 자극할 소지가 크다. 청와대가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도 인사를 했다면 판단 착오요, 경찰의 내사 정보를 확실히 파악하지 못한 채 인사를 했다면 검증 소홀이다. 또 인사 이전에 이 내용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면 보좌의 실패도 겹친다.

어느 쪽이든 청와대의 민정·정무·인사 라인은 기능 부전에 빠졌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런 인사 사고가 벌써 몇 번째인가. 더 늦기 전에 의혹의 진상과는 별도로 청와대의 인사 검증 시스템에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