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울리는 사이버 노점상 ‘사다드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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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에서 여성의류 매장을 운영하는 강모(42·여)씨는 얼마 전 황당한 일을 당했다. 매장을 찾은 한 손님이 물건을 보고 “사다드림에서 더 싸게 판다”며 가버렸다. 주변 자영업자들에게 물어보니 블로거들이 사업자등록도 하지 않고 현금으로 선주문을 받아 영업하는 ‘사이버 노점상’이라고 알려줬다. 강씨는 “세금·재고처리비·매장유지비는 하나도 안 들 테니, 나보다 몇 천원씩 싸게 팔아도 어림잡아 40%는 남겠다”고 말했다.

 불법 인터넷 상거래 ‘사다드림’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사다드림이란 ‘사다가 드린다’는 의미다. 매장이나 인터넷 쇼핑몰을 열지 않고, 포털사이트가 개인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블로그 공간에서 현금 선입금을 조건으로 하는 판매 행위다. 교환·환불은 안 한다. 대부분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았기에 현금영수증 발급도 불가능하다. 미리 물건값을 받은 만큼만 사오기 때문에 재고 걱정도 없다. 물론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는다. 포털사이트에 둥지를 틀고 영세 자영업자를 울리는, 또 하나의 지하경제다.

 현재 네이버에는 5000여 개의 사다드림 블로그가 있다. 하루에도 100건이 넘는 판매글이 올라온다. 유명 블로거의 경우 월 2~3회 사다드림을 하는데, 1회 판매에 수천 건씩 주문을 받기도 한다. 월 억대 매출도 가능하다. 사다드림은 지난해 하반기에 처음 등장했는데,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자 급속도로 늘고 있다.

 통신판매업 신고도 하지 않고, 사업자등록번호와 판매자 신원 정보를 게재하지 않은 전자상거래는 불법이다. 사다드림 블로거들은 “대신 구매해 주는 것이니 상거래가 아니다”고 항변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익을 얻으면 엄연한 통신판매고, 이익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으니 탈세다. 이윤을 보지 않더라도 부가가치세를 납부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미 탈세를 저지른 것이다. 합법적으로 영업하는 자영업자들은 피해를 호소한다. 소비자를 뺏기는 것은 물론이고, 불법 업체와 가격 경쟁까지 하려면 이윤을 남길 수 없기 때문이다. 강씨는 “불경기에 재고 부담을 떠안고, 매달 400만~500만원의 유지비를 들여 장사하는 나 같은 사업자는 바보인가”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대부분의 포털사이트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불법 영업 블로그를 네이버 고객센터에 신고했더니, 다음 날 “블로그 운영자에게 통신판매 중개자 정보를 표시해 줄 것을 요청했다”는 답변 e메일이 돌아왔다. 그러나 해당 블로그에는 변화가 없었다. 반면 싸이월드는 블로그의 상업화를 막기 위해 게시글을 전수 조사해, 상거래를 유도하는 글은 발견 즉시 삭제 처리한다.

사이버 탈세가 늘자, 국세청은 지난달부터 홈페이지에 전용 제보 창구를 따로 열었다. 하지만 실제 조치를 취한 적은 없다. 국세청 담당자는 “제보자가 구체적인 탈루 사실을 입증해야 세무조사에 착수하는데, 영업자의 실명조차 알기 어려운 인터넷의 특성 탓에 제보가 들어와도 활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 인터넷 쇼핑몰 운영자는 “네이버에 신고해도, 국세청에 제보해도 아무 변화가 없으니 어쩌란 말인가”라고 하소연했다.

심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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