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은행 민영화를 놓고 '단계적인 매각'을 택했다.
공적자금을 회수하려면 정부 지분을 서둘러 팔아야 하지만, 그러다 보면 최근 모처럼 상승세를 타는 증시에 물량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두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것인데, 그래서 정부는 '적절한 속도로 추진한다'는 합리적인 듯하면서도 모호한 표현을 썼다.
실제로 공적자금 투입 9개 은행의 주식물량은 9조1천억원(액면가 기준)에 달한다. 정부지분 1백%인 우리금융(3조6천3백억원).서울은행(6천1백억원)과 80%인 조흥은행(2조7천1백억원)이 이른바 '빅3'다.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수도 없는 것이 공적자금을 왜 회수하지 않느냐는 따가운 여론이 있는데다 최근 은행들이 이익을 많이 내고 신용등급이 올라가는 등 여건도 좋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고심 속에 확정된 정부의 민영화 방안은 따라서 앞으로 증시나 경제여건에 따라 변경될 가능성을 태생적으로 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조흥은행=상반기 중 구주 약 15%(5억달러 내외)를 해외에서 주식예탁증서(DR) 형태로 매각한다. 구체적인 규모나 시기는 30일 시작되는 해외 로드쇼의 반응을 보고 결정한다.
하반기에 전략적 투자자, 즉 경영에 참여할 뜻이 있는 국내외 금융기관에 15~20%의 지분을 일괄 매각한다.
전략적 투자자는 단순히 매매차익이나 배당수익을 노리는 자본과 성격이 다르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전략적 투자자에 매각이 여의치 않을 경우 연.기금 등 국내 기관투자가에 장외시장에서 매각하는 '블록 세일(Block Sale)'을 추진한다.
블록 세일과 관련해 재경부 주형환 은행제도과장은 "국내 증권사를 주간사로 선정해 매각 물량을 일괄 인수케한 뒤 이 증권사가 여러 가지 옵션을 넣어 기관투자가에 재매각하는 방안이 한 예"라고 말했다.
내년 이후 교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5% 정도의 지분을 매각하는 등 2005년까지 단계적으로 판다.
◇ 우리금융지주회사=5월 말~6월 초 공모를 거쳐 증권거래소에 상장한다. 증시 상황이 안좋아 상장이 어려울 경우 교환사채를 발행하는 대안도 생각하고 있다.
조흥은행처럼 하반기에 전략적 투자자에 매각하되 잘 안될 경우 기관투자가에 블록 세일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내년 이후 해외 DR를 발행하고 뉴욕증시 상장도 추진한다.
◇ 나머지 은행=서울은행은 올해 경영권을 넘긴다는 게 원칙이다. 정부는 인수를 희망한 산업자본과 우량은행 등에 모두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농협과 수협, 한미.하나은행은 공적자금 지원 당시 상환일정이 이미 확정돼 있다. 농협은 2005~2006년, 한미.하나은행은 2004년 3월까지 각각 분할 매각한다.
국민.외환은행 지분은 올해 매각하지 않는다. 은행주 물량이 한꺼번에 시장에 나오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단 마땅한 전략적 투자자가 있으면 조기 매각키로 했다.
고현곤 기자 hkko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