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기업 해외매각] 6. 끝 전문가 조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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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해외 매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학계.연구기관의 전문가와 기업 매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던 협상 실무자들은 '상대를 제대로 알고 스스로에게도 정직해야 한다'는데 입을 모았다.

무엇보다 '지피지기(知彼知己)'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 상대를 제대로 알라=협상 전문가인 P변호사는 "우리 협상팀은 상대방을 너무 모른다"고 지적했다. 구매자 측의 지분 구성이 어떤지, 매입후 진짜 경영할 의사는 있는지, 차익만 챙기고 되팔려는 건 아닌지 등을 확실히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신인석 연구원은 "국내 금융기관을 인수하겠다고 했다가 돌연 포기한 한 미국 업체의 경우 국제 금융가에서 '종잡을수 없는(unpredictable) 스타일'로 잘 알려져왔는데, 우리 정부는 순진하리만치 협상을 낙관해왔다"고 말했다.

◇ 전략을 분명히 세워라=협상 전문가인 A로펌의 J변호사는 "싸게라도 빨리 팔아야 할 건지, 늦춰도 되는지부터 정하고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제값받고 빨리 판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라고 못박았다.

한국경제연구원 이인실 선임연구위원도 "시기인지, 가격인지 협상의 최대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금융연구원 최공필 선임 연구위원은 "매각 타이밍도 문제"라고 강조했다. 부실이 점점 커질 것이 분명할 경우엔 매각 가격에 집착하기 보다는 경제적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회비용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전문가에게 맡겨라=세종대 전성철 부총장은 "협상의 전문성이 없다. 이는 협상을 전문 분야로 생각하지 않는 우리의 사고방식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충분한 경험과 전문 지식을 갖춘 사람을 투입하기 보다 '담당 국장이 하면 된다'는 생각이 아직 팽배해 있다는 말이다.

이인실 연구위원은 "협상 경험이 일천한 공무원들이 기업인수 합병 등에 이골이 난 외국 기업을 상대하기란 애당초 무리"라고 단언했다.

그는 따라서 "눈치보기에 바쁜 공무원보다는 거래이익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전문가를 기용하는 게 결과적으로 남는 장사가 될수 있다"고 지적했다.

협상 전문가 C변호사는 "한라그룹 계열사나 삼성자동차의 사례처럼 주인이 매각 주체가 된 경우는 잘 풀렸으나 대우.한보 등 주인이 떠난 경우는 일이 안 풀렸다"며 "가급적 기업을 가장 잘 아는 사람에게 매각을 맡기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 사공의 숫자를 줄여라=금감위 기업구조조정위원회 사무국장 출신인 국민은행 이성규 부행장은 "매각 주체는 채권단이든, 경영진이든 단일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엇갈린 주장이 자꾸 새나와 협상이 좌초된 경우가 허다했다는 것이다. 훈수꾼이 너무 많았다는 얘기다.

전성철 부총장은 "우리 협상팀은 청와대.금감위.채권단.언론 등 눈치봐야 할 곳이 너무 많다.

사공이 많은데 배가 어디로 가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지금처럼 공무원이 주도하는 분위기에서 잦은 인사로 협상 담당자가 수시로 교체되는 것도 협상력을 떨어뜨린다"고 꼬집었다.

◇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말라=이인실 연구위원은 "장관이든 금감위원장이든 자신의 임기내에 큰 업적을 남기겠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다음달에 본계약을 한다''9부 능선을 넘었다'는 등 중계성 발언은 금물이라는 것이다.

전성철 부총장은 "우리나라에서는 경제문제를 다루는 협상이 만인이 주시하는 정치적 협상이 되고 만다"며 정치적 고려를 지나치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B법무법인의 Y변호사는 "외국 기업의 입장에서 MOU는 '앞으로 잘해보자는 것'이고 본계약은 '여러 조건이 충족되면 사겠다'는 정도인데 우리 협상팀은 마치 일이 다된 것처럼 떠벌리는 경우가 많았다"며 "최종 완료 때까지 섣부른 예단은 금물"이라고 지적했다.

◇ 정직해야 성사된다=최공필 선임연구위원은 "우발적 채무나 불투명한 지배구조, 노사문제 등 잠재적 문제들을 과감히 공개하는 것이 협상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성규 부행장은 "주주와 노조 등 이해관계자들이 손실을 분담할 각오를 하는 것도 협상 성공에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동섭.장세정.최현철 기자 don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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