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고교시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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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호 04면

대학시절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소설가 최인호가 쓴 자전 소설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친구들과 사귄 얘기, 학교 생활, 첫사랑 등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었죠. 저는 그 책을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고등학생이 데카르트와 칸트에 대해 친구들과 밤새 토론을 해? 요즘엔 대학생도 그런 책 잘 안 읽는 것 같던데?

미심쩍었던 저는 작가의 S고 후배였던 외삼촌과 여쭤보았고 당시의 전설에 대해 조금 귀동냥을 할 수 있었습니다. 뭐, 다들 그랬던 것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1970년대 대한민국 청년문화를 상징하던 최인호의 패기만만한 자신감의 원천은 바로 그 고교시절의 낭만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올해 고 3이 된 큰 딸이 13일 첫 모의고사를 치렀습니다. 첫 시험이어서인지 부담이 컸던 모양입니다. 밥도 잘 안 먹고 틈만 나면 쓰러져 잡니다. 방에는 각종 오답노트가 덕지덕지 붙어있고 책꽂이에도 참고서 일색입니다. 생각해 보면 제 고교생활도 비슷했습니다.

언제부터 고등학교가 대학을 위한 징검다리로만 기능한 걸까요. 그 감수성 충만하고 머리 말랑말랑할 때 문학과 예술의 기쁨을 온몸으로 느껴야하지 않을까요.

암투병 중인 최인호 선생이 최근 출간한 『인생』에는 이제 거울 앞에 돌아와 삶을 반추하는 작가의 육성이 절절이 묻어납니다. 행간마다 젊은 날을 열심히 살았었노라는 자신감이 느껴진 것은 역시 최인호였기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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