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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경제성장·민주주의·사회개혁 ‘트라이애슬론’ 뛰고 있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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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지브 간디의 아들로 인도 국민회의당의 2인자인 라훌 간디(42·왼쪽)는 내년 4월 총선에서 네루-간디 가문의 네 번째 총리를 노리고 있다. 사진은 2009년 4월 인도 동부 오리사주 총선 유세에서 유권자들에게 합장하며 인사하는 모습. [중앙포토]

지난 3일(현지 시간) 인도 뉴델리 도심 아쇼카 로드에 위치한 인도 제1야당 BJP(인도국민당) 당사 일대에는 전국 당직자회의(콘클라베)를 알리는 현수막이 곳곳에 나부끼고 있었다. 6일 남부 타밀나두주의 주도 첸나이에는 지역정당인 ‘전인도 안나 드라비다 진보연합(AIADMK)’의 당수 J 자야랄리타(65)의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7억 유권자가 지상 최대의 민주선거를 치르는 인도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네루-간디 가문의 라훌 간디(42)에게 시선이 쏠린다. 반대쪽에선 인도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주(州)총리 3선에 성공한 나렌드라 모디(62) 구자라트주 총리가 각광받는다. 할머니 인디라 간디와 아버지 라지브 간디를 흉탄에 잃은 라훌 간디는 국민회의당 당수인 어머니 소냐 간디(67)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지난 1월 19일 당내 2인자 자리에 올랐다. 내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어 총리직에 오르겠다는 포석이다. 이에 맞서 3일 뉴델리에서 열린 BJP 콘클라베에서 연사로 나선 나렌드라 모디는 “국민회의당은 가문의 이익을 위해 국익을 희생했다”며 7억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했다. 인도 총선 레이스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라훌 무크헤르지 싱가포르대 교수는 “내년 총선에서 집권당이 바뀐다고 해도 큰 틀의 경제 정책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2190만 해외 인도인이 숨은 성장엔진
인도의 정치 지도자 사이에서는 요즘 ‘토끼와 거북이’ 우화를 언급하는 빈도가 크게 늘었다. 중국보다 낮은 성장률을 놓고 “행복은 성장률 순이 아니다”라며 성장 혜택이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나눔 성장, 빈곤층을 위한 성장을 강조한다. 국민회의당이 BJP의 ‘빛나는 인도’ 슬로건에 맞서 지난번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도 ‘인간의 얼굴을 한 성장’ ‘포용 성장’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지난해 시작한 12차 5개년 계획의 목표 역시 ‘더 빠르고, 지속 가능하며 더 포용하는 성장’이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인디아 프로젝트 책임자인 탄비 마단 박사는 “인도가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에 참가하는 동안 중국은 마라톤만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인도는 마라톤(경제성장), 수영(민주주의), 사이클(사회개혁)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는 반면 중국은 경제성장에만 몰두해 정치·사회 개혁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마단 박사는 “서구인들은 다인종·다종교에서도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인도의 승리를 바라고 있다”면서 “하지만 민주주의가 성장 둔화의 변명이 돼서는 안 되며 민주주의 없는 성장 역시 인도는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도의 길(Indian way)’은 일찍부터 중국과 달랐다. “지금 인도를 개방하고 정책을 바꾸시오. 해외로 나간 인도인을 주목하시오. 그들이 영국·싱가포르와 전 세계에서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보시오. 당신은 그들을 정책과 관료주의로 가두고 있소.” 리콴유(李光耀·90) 전 싱가포르 총리가 1980년 비행기 사고로 숨진 인디라 간디 총리의 아들 산제이 간디의 장례식에 참석해 했던 말이다. “그럴 수 없어요. 인도는 ‘인도의 길’을 갈 것입니다.” 인디라 간디가 대답했다. 리콴유는 최근 출판된 저서에서 “나는 그때 공산주의의 틀을 부수고 일어서는 중국을 봤다. 동시에 (인도와 중국의) 경주가 서로 같지 않음을 알았다”고 회상했다.

일찍이 리콴유는 해외로 진출한 인도인들의 힘을 주목했다. 그 정도로 막강하다. 2190만 NRI(Non-resident Indian·해외 거주 인도인)는 금융·IT를 중심으로 전 세계를 움직이는 인도의 숨겨진 힘이다. 유대인이나 화교(華僑)의 위력에 비견된다.

3일 인도 뉴델리 엠비디언스 쇼핑몰에서 열린 랜드로버사의 SUV 로드쇼. 델리=신경진 연구원

지난 7일 섭씨 35도를 오르내리는 더위를 뚫고 찾아간 싱가포르 리틀인디아의 무스타파 센터. 이곳은 싱가포르에 사는 67만 인도인의 구심점이다. 무스타파 쇼핑센터에는 평일 낮에도 많은 인도인이 쇼핑을 즐기며 삼삼오오 모여 안부를 묻고 있었다. 인도인의 해외 이주는 크게 네 차례 이뤄졌다. 라제슈 라이 싱가포르대 교수는 “영국 식민지 이전 여행가·교사·상인들의 이주, 대영제국의 강제 노동자 이주, 파키스탄·방글라데시 등 인도의 분할로 인한 이주, 최근에는 고급 인력의 세계 진출로 나눠 볼 수 있다”며 “특히 네 번째 이주는 인도 경제의 숨겨진 성장동력”이라고 말했다.

전문직 종사자가 주류인 NRI의 평균 수입은 각국에서 최고 수준의 소득을 자랑한다. 최근 발표된 미국 쪽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인도계 미국인 가구의 연평균 수입은 8만8000달러에 이른다. 미국 평균치보다 2만 달러나 더 높다. 단순노무자 송출을 막는 정부정책 때문에 한국에 살고 있는 8000여 명의 인도인 중 단순 노무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 세계 화이트칼라 직종의 3분의 1이 인도계라는 말도 나온다. 인도 건국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 역시 영국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남아공에서 변호사로 활동한 NRI 출신이다. 인도 정부는 간디가 뭄바이로 돌아온 1월 9일을 기념해 ‘해외 인도인의 날’ 행사를 열고 있다. S R 나산 전 싱가포르 대통령을 비롯해 모리셔스 대통령, 뉴질랜드 총독 등도 NRI였다. 최근 인도의 주 정부들은 경제 개발을 위해 해외 NRI의 자본을 유치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은 덜 이성적, 인도는 덜 감정적”
1962년 10월 20일은 인도 외교의 전환점이 된 날이다. 중국군이 이날 히말라야 산맥을 따라 4000여㎞ 이어진 인도와의 국경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국전쟁 기간에 티베트를 점령한 데 이어 미·소 사이에 쿠바 미사일 위기가 터지자 양국 국경선을 놓고 전쟁을 벌였다. 중국은 미국이 쿠바 해상 봉쇄를 공식적으로 종료한 12월 1일 일방적인 정전을 선언했다. 당시 네루가 추구한 비동맹 외교는 어떤 나라도 인도를 도와주지 않는 결과를 낳았다. 비동맹 외교는 탄력을 잃고 국방 현대화가 추진됐다. 중국과의 불편한 관계도 시작됐다.

냉전 종식 후 인도는 국익을 위한 ‘모호한’ 외교로 나아갔다. 라훌 무크헤르지 싱가포르대 교수는 “인도의 3대 외교 과제는 ▶파키스탄과의 갈등 해소 ▶중국과는 적대하지도 간과하지도 않는 이중정책 유지 ▶미국과의 안정적 관계 유지”라고 지적했다. 라훌 교수는 “중국은 덜 이성적인 반면 인도는 덜 감정적”이라며 “환경 문제, 외국인 투자 등 여러 면에서 인도는 중국과 정반대 길을 걷고 있다고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인도가 그리는 미래는 고차원적이다. 인도정책연구소가 최근 내놓은 정책보고서 ‘비동맹 2.0’은 “인도는 단순히 강대국을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 강대국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표준을 세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인류의 대안을 추구했던 간디·타고르·네루의 전통을 이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세우는 게 인도의 정통성이라는 주장이다. “인도는 코끼리와 같다. 느리지만 일단 움직이면 누구도 그를 멈추게 할 수 없다.” 지난해 3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만모한 싱 인도 총리가 한 말이다. 인도 코끼리는 속도를 늦추기는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중국이 굴기(?起)하는 이상 인도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김찬완 한국외대 교수는 강조한다. 리콴유 전 총리 역시 “아시아에서 전략적 균형추는 미국이 아닌 인도”라고 전망했다. 한국이 인도와 함께 가야 하는 이유다.



취재팀 염태정 기자, 뉴델리·첸나이·싱가포르=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임정성 포스코경영연구소(POSRI)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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