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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 강이 합쳐지는 곳, 여의도 4배 넓이 강변이 성스러운 ‘욕조’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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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호 14면

성스러운 상감 지역에서 목욕하는 사람들. 흙탕물이지만 이들에게는 성스러운 물이다.

축제에 한 번 참석하는 것만으로 미래가 행복해진다면? 아마도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다. 실제로 그런 축제가 있다. 인도 북부 알라하바드 갠지스 강변에서 열리는 쿰부멜라다. 올해에는 무려 1억 명이 참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144년마다 열리는 ‘마하 쿰부멜라 축제’ 가보니

쿰부(Kumbh)는 힌디어로 물주전자, 멜라(Mela)는 축제를 의미한다. 힌두 신화에서 신과 악마들이 불멸의 영약이 든 주전자를 차지하려고 서로 다투다가 그 방울이 떨어졌다는 북인도의 네 지역, 즉 알라하바드, 나식, 유차인, 하리드와르에서 정기적으로 열린다. 알라하바드가 그중 가장 성스러운 곳으로 여겨진다.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세상을 창조한 후에 첫 번째 제물을 바친 곳, 그리고 갠지스 강, 야무나 강, 전설 속 지혜의 강 사라스와티가 합쳐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열리는 쿰부멜라는 12년 만에 한 번씩 개최된다. 그것이 12번째 되는 해, 즉 144년 만에 오는 해에는 위대한 마하 쿰부멜라가 개최된다. 가장 성스럽고 영광된 쿰부멜라, 올해가 바로 그해다.

쿰부멜라 기간 동안 성스러운 세 개의 강이 합쳐지는 지점에서 목욕을 하면 전생에서 쌓았던 원죄가 모두 사해지고 윤회의 고통에서 해방되어 구원을 받게 된다고 힌두교도들은 믿는다.

이 축제 얘기를 들었던 것은 6년 전 류시화 시인과 처음 인도에 갔을 때였다. 나를 인도로 이끌어줬던 그분이 자신이 6년 전에 갔던 이 축제가 얼마나 장관이었는지를 눈을 반짝이며 설명할 때 내 마음은 이미 쿰부멜라에 홀려 있었다. 게다가 평생에 한 번 오기도 어려운 마하 쿰부멜라라니 ….

쿰부멜라가 개최되는 시기와 기간은 태양의 위치와 행성의 배열을 관찰하는 점성술에 따라 결정된다. 이번 마하 쿰부멜라는 1월 14일부터 3월 10일까지 55일간이다. 그 기간 중 9번의 ‘성스러운 목욕일’이 있다. 내가 가는 2월 25일이 그중 하나다. 최소한 1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릴 것으로 예측됐다. 2월 10일의 ‘가장 성스러운 목욕일’에는 3000만 명이 몰렸다고 영국 BBC가 보도했다.

새벽부터 서둘러 알라하바드로 길을 떠났다. 어렵게 구한 전세 택시를 타고 출발하는데, 운전기사가 너무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바라나시에서 원래 세 시간 거리인데 얼마 전에 다녀온 사람 얘기는 길이 너무 막혀 가는 데만 15시간 넘게 걸렸다고 했다. 긴 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좀 걱정이 되는데 통역 겸 해서 함께 가는 브라만 친구 산제이가 내 마음을 알았는지 “하리 하르 마하데브” 하면서 축복의 만트라(일종의 주문)를 외워준다. 위대한 신의 이름을 불렀으니 ‘노 프라블럼’일 것이란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는데 생각보다 빨리(6시간 만에!) 알라하바드에 도착했다. 2월 11일 알라하바드 기차역에서 36명이 압사하는 사고가 있었는데 그 때문에 이번에는 적게 오는 것인지, 아니면 복잡한 시간대의 틈새를 재수 좋게 잘 탄 것인지, 그도 아니면 산제이의 만트라가 효험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시내로 들어가니 거의 모든 종류의 탈것과 사람들이 한데 얽혀 아수라장이다. ‘성스러운 합강 지점’ 상감(Sangam)으로 향하는 시내 길은 아예 차량통행을 막아놓았다. 차에서 내려서 걷기 시작했다.

사람, 사람들로 이루어진 끝없는 물결이 상감 방향으로 도도히 움직이고 있었다. 인도 전역에서 고생하며 찾아왔을 초라한 복장의 사람들이 무거운 짐을 이고 들고 그저 묵묵히 뜨거운 태양 아래 걷고 또 걷고 있다.

잃어버릴까봐 끈으로 서로를 묶고 걷는 젊은 부부가 보였다. 말을 걸어보니 3일 밤낮을 기차, 버스를 바꿔 타면서 이곳에 도착했단다. 아이까지 데리고. 대단한 믿음, 대단한 열정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슬슬 체력이 떨어져 갈 때쯤 상감 입구에 도착했다. 고생스럽게 걸어왔던 사람들 얼굴이 기대감에 차면서 웃음이 감돈다. 걸음들이 절로 빨라지는데 시야가 툭 트였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 자리에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서울 여의도 넓이 4배 정도 되는 광대한 합강 지역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도 나름대로는 질서를 지키면서 열심히 목욕을 하고 있다.

경찰이 정한 규칙은 ‘담그고 바로 나오라(Dip and out)’는 것이어서 목욕이라기에는 조금 민망한 수준이다. 원래 오염이 심각하다는 강물도 사람들 때문에 더 더럽혀져서 거의 흙빛이다.

그래도 수많은,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기쁨에 차서, 경건하고 진지하게 그 순간을 누리고 있었다. 나도 덩달아 경건해져서 한참을 서서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남자, 여자, 가난한 사람, 부자인 사람,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누구 할 것 없이 하나의 염원으로 겸허하게 그 자리에 와 있었다. 전생의 죄가 사해져 현세에서 더욱 행복해지고 내생에서는 윤회의 사슬을 끊고 인생의 고해에서 벗어나 해탈에 이르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간직한 채 ….

인도 사람들은 무한한 우주의 시간을 살아가는 현명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세의 인생은 자신의 전생 탓이니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고, 지금 아무리 힘들고 고달프다고 하더라도 내세를 준비하면서 그저 현세를 흘려보낼 수 있는 사람들이다. 벗어날 수 없는 카스트의 굴레, 빈곤의 수레바퀴에서 생활하는 수많은 인도 사람들이 그 고통스러운 세월을 견뎌내도록 하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고 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우주의 시간에서 인생은 그저 찰나에 불과한 법이니.

이제 돌아가는 길, 힘든 길을 되짚어서 떠나온 곳으로 고생하며 돌아가야 할 사람들이지만 불쌍해 보이지는 않았다. 구원을 받았다는 믿음, 내세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것으로 인생이 좀 더 행복해졌을 테니까.

같은 믿음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나만이 다시 걸어서 돌아가느라 거의 탈진할 지경이다. 그저 구경거리 찾아온 불경스러운 외국인이지만 고생해 가면서 그 대단한 마하 쿰부멜라에 참석을 했으니 곁다리로 구원받지 않을까 하는 헛생각을 잠깐 하면서 힘든 몸을 달래려는데…아차, 나는 목욕도 안 했다.



주영욱 경영학 박사이자 경영자, 여행 전문가 및 음식 칼럼니스트이면서 사진작가로 활동한다. 바라나시에서 찍은 사진들로 갠지스 강변에서 전시회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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