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DJ의 '비즈니스 중심국' 뒷받침, 뜻은 좋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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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올 연두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로 발전하기 위한 청사진과 전략을 상반기 안에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金대통령의 이런 구상을 뒷받침하기 위해 잡은 것이 올해 세계 최대 이벤트인 한.일 월드컵. 개막식에 맞춰 세계적 다국적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서울로 불러 개막식도 구경시키고, 다국적기업 지역본부 등 거점형 투자 유치를 추진하자는 계산이다. 일정은 오는 5월 28일부터 5박6일간. 이는 지난 18일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발표됐다.

허나 정부의 '야심찬 기획'이 ▶촉박한 일정▶미숙한 준비▶부실하고 일방적인 행사 내용 탓에 되레 한국의 이미지만 구길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다.

◇ 부실한 방한 프로그램='항공비와 체제기간 중 숙식비 일체는 정부가 부담…'. 유럽계 다국적기업 한국법인의 한 외국인 지사장은 최근 정부로부터 "본사 CEO의 한국 방문을 도와달라"며 이런 내용의 영문(英文)초청 편지(사진)를 건네받고 쓴웃음을 지었다.

초청장의 격식과 품위가 떨어지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이렇듯 중요한 행사에 별다른 첨부자료 없이 A4용지 한장만 달랑 건네받았기 때문. 스케줄 역시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였다는 것.

산업자원부장관 주재로 외국 기업의 한국 투자성공 사례 소개 등 무미건조한 주제의 간담회 및 만찬(5월 30일), 월드컵 개막식 참석(31일) 뿐이다. 마지막 이틀은 '개인 일정'을 잡았다. 게다가 방한기간 중 대통령을 만날 수 있을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tentative)는 설명까지 달았다.

편지를 접한 또다른 미국 기업인은 "한국 정부가 (다국적기업 CEO들을)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핀잔을 놓았다.

그는 또 "초청할 손님들은 많게는 수십여만명의 임직원을 두고 전세계 사업장을 자가용 비행기로 이동하며 체크하는 글로벌기업의 총수들"이라며 "이런 내용 없는 행사와 일정을 제시한다면 과연 누가 오겠느냐"고 반문했다.

한국외국기업협회 등 국내 기업.경제단체들도 이 기간 중 비슷한 성격의 CEO초청 행사를 준비 중이다. 최악의 경우 '겹치기 일정'이 돼버려 초청 CEO들이 분산될 가능성도 없지 않은 상태다.

◇ 치밀한 준비 필요=다국적기업 CEO들은 예외없이 국가원수 못지 않은 빡빡한 일정에 쫓긴다.

때문에 이들을 한자리에 부르는데 필요한 것은 무료숙식 제공, 혹은 월드컵 개막식 공짜 티켓이 아니라는 것이 외국기업인들의 한결 같은 목소리다.

한국 방문이 왜 중요하고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자세와 성의', 이에 걸맞은 알찬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주한EU상의 지동훈 이사는 "방문기간 중 CEO들을 상대로 한 정부의 새로운 투자정책 발표 같은 '유인책'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행사 일정.내용 등을 서로 논의할 수 있는 의견조율 과정도 중요하다. 제프리 존스 미상공회의소(AMCHAM)회장은 "구체적인 행사 프로그램을 책자 형태 등 보다 상세히 만들어 전달하고, 초청 대상 한국지사 대표에게도 초청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적극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산자부 관계자는 "초청 행사 준비는 이제 시작인 만큼 여러가지를 보완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미 경제전문지인 포천 선정 5백대 기업 중 한국에 투자한 2백여개 기업의 CEO가 초청대상자"라며 "이미 몇몇 다국적기업 CEO가 방한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표재용 기자 pjyg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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