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휴먼 네이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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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주인공 라일라와 퍼프, 나단이 각각 경찰 취조실, 청문회장, 저승 입구 대기실에서 서로 다른 진술을 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호르몬 이상으로 온 몸에 털이 자라는 여자, 라일라. 지성과 미모를 갖췄어도 그녀가 얻을 수 있는 직업이라고는 서커스단의 여자 킹콩 역이 고작이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하루 하루를 살아가던 어느 날, 라일라는 자살을 결심한다.

욕실에서 자신의 팔목을 면도칼로 그으려는 순간, 생쥐 한 마리가 마치 그녀를 비난하는 듯이 빤히 쳐다본다. "난 온 몸이 털로 뒤덮였어도 전혀 불행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듯한 생쥐의 눈빛을 보며, 라일라는 인간사회의 잣대로 자신의 외모를 저주해왔던 어리석음을 깨닫는다.

라일라는 자연다큐 소설을 발표해 평생 먹고 살 돈을 벌자마자, 속세와 인연을 끊고 숲으로 들어가 자연과 벗하며 새로운 행복을 찾는다. 하지만 성욕과 사랑에 목마른 라일라는 독수공방의 고통까지 감내하기엔 역부족...

결국 그녀는 문명세계로 돌아와 사랑할 짝을 찾아내지만, 그 남자가 하필이면 털난 짐승과 야만성을 혐오하는 남자, 나단이었으니...

아카데미, 골든 글로브, 베니스, 토론토를 비롯해 전 세계 38개 영화제에서 88개 부문 영화상에 노미네이트 되어 41개 상을 수상한 화제작 '존 말코비치 되기' 한 편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각본가 찰리 카우프만. 41개 상 중에서 그에게 돌아온 상만 해도 13개에 이른다. 첫 작품 '존 말코비치 되기'가 찰리 카우프만을 천재 작가로 불리게 해줬다면, 두 번째 야심작 '휴먼 네이쳐'는 그를 세계 최정상의 시나리오 작가로 추앙받게 해주었다.

가장 많은 상을 수상한 CF로 기네스 북에 오른 리바이스 "DRUGSTORE"(1994)를 연출한 미셀 곤드리 감독은 헐리우드의 초대형 러브 콜들을 마다하고, '휴먼 네이쳐'를 그의 첫 장편 데뷔작으로 낙점했다.

곤드리는 능숙하고 열정적인 배우들의 연기를 초현실적인 화면에 담아내기 위해 기발한 세트, 백프로젝션, 이중노출을 이용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풍부한 영상은 폭넓은 주제를 조화롭게 녹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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