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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핵공포 3단계 시나리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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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동굴서 꺼낸 장사정포 둘러보는 김정은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11일 서해 백령도와 마주한 북한군 최전방 월래도방어대를 찾았다. 유사시 백령도에 주둔하는 우리 해병 6여단을 타격하는 임무를 맡은 곳이다. 김정은은 “명령만 내리면 적들을 모조리 불도가니에 쓸어넣으라”고 지시했다. 이어 이곳 4군단 지역에 있는 장사정포 부대도 들렀다. 장사정포는 최대사거리 54㎞로 2분30초마다 한 발씩 발사가 가능해 북한의 기습도발 시 가장 위협적인 무기로 꼽힌다. 북한은 동굴형 갱도 안에 감춰두던 장사정포를 꺼내 김정은이 둘러보는 모습을 촬영한 뒤 이를 노동신문에 공개했다. [이영종 기자], [사진 노동신문]

북한이 최근 남한과 국제사회를 상대로 전쟁 공포를 조성하고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는 건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의 3단계 시나리오에 바탕한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것이란 게 정보당국의 분석이다. 다시 말해 실제 전쟁을 일으키려는 것이라기보다 심리전을 통해 우리 정부를 굴복시키려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북한 내부 사정에 밝은 대북 소식통은 12일 “김정은이 최근 대남·대내·해외에서 핵전쟁 공포감을 조성하라고 비밀리에 지시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미 3단계 시나리오의 1단계가 남한 사회를 상대로 발동되기 시작했고 나름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적진을 벌초해 버려라”거나 “서울과 워싱턴을 핵 불바다로 만들 것”이란 등의 섬뜩한 발언과 정전협정 백지화, 판문점의 남북 간 직통전화 중단 같은 조치를 취하면서 국민 사이에 “이러다 전쟁 나는 것 아닌가”라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또 이를 빌미로 일부에선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는 등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는 주장들도 나오고 있다. 전쟁 공포가 커지고 남한 내부의 갈등이 표면화할 경우 사회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정부는 이와 관련, 우리 정부가 북한을 압박해 전쟁 상황이 연출됐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인터넷을 통해 유포하는 조직화된 세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세력의 인터넷 IP를 추적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남한을 혼란에 빠뜨리는 데 이어 김정은은 북한에 체류 중인 외국인과 제3국 정부를 대상으로 2단계 조치를 발동할 계획을 짜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2단계 조치의 일환으로 북한은 조만간 평양 등지에 체류 중인 외국인들에게 출국령을 내릴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 당국이 “곧 전쟁이 터질 텐데 우리는 당신들의 신변 안전을 보장할 수 없으니 출국하라”고 압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중국·동남아와 유럽 등지의 북한 공관을 통해 주재국 정부에 “(북한에 체류 중인) 자국민들을 철수시키라”는 통보를 할 것으로 파악됐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물론 제3국 등 해외에서도 ‘한반도 전쟁설’이 나돌면서 긴장은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북한은 전망하고 있다고 한다.

전쟁을 벌이지 않고도 대남 압박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게 김정은의 계산이라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김정은의 3단계 시나리오 중 최고 단계는 국지전 도발이나 테러다. 다만 2010년 11월 발생한 연평도 포격 같은 도발을 북한이 감행하지 못할 것으로 우리 정부는 보고 있다. 북한의 소행임이 명백한 군사 도발을 일으킬 경우 우리 정부가 도발 원점은 물론 지휘부와 지원세력까지 응징하겠다고 공언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은 동해상에서 한·미 합동 군사훈련이 진행 중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우리 정부와 군이 유엔 헌장(51조)이 인정한 자위권을 발동하지 못하도록 교묘한 비대칭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북 소식통은 “천안함 폭침 사건처럼 북한이 도발해도 곧바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택할 공산이 크다”며 “공항이나 다중이용시설을 겨냥해 기습적인 테러를 자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렇게 할 경우 남한 사회에 실질적 충격을 가하면서도 보복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점을 노린 것이다.

 김정은이 실제 전쟁보다는 전쟁 공포감을 조성하는 방식으로 고도의 심리전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은 북한의 몇 가지 행태를 봐도 드러난다.

 북한은 최근 현역 소장을 단장으로 다수의 장성이 포함된 인민무력부 투자 대표단을 동남아에 파견해 체류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정보 당국자는 “전쟁을 하겠다면서 현역 장군을 해외에 투자 유치를 위해 한가하게 파견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북한이 전쟁 위협을 가하며 판문점 연락 전화를 끊었지만 개성공단 가동을 위해 남북한 간에 설치된 서해 군사 통신선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북한의 속셈이 드러난 대목으로 대북 소식통은 분석했다. 통신선을 차단하면 북한 근로자 5만여 명이 받는 연간 현금 수입 9000만 달러(약 986억원)를 날리게 된다.

 남북한의 비행정보구역(FIR)에서 이뤄지는 남북 항공관제도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다. 중국 국제항공 등 북한 영공을 통과하는 약 30편의 항공기는 편당 최고 890달러, 연간 900만 달러의 영공 통과료를 북한 당국에 내고 있다. 전쟁을 하겠다면서 가장 민감한 서해 상공에서 돈벌이를 하고 있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의 속셈은 전쟁 분위기를 조성해 대내적으로는 식량난 등으로 지친 주민 결속력을 높이고 군부 등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할 의도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대외적으로 정전 상태를 깸으로써 전쟁 불안감을 조성해 한·미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 빅딜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글=장세정·정원엽 기자
사진=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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