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타나베부인의 귀향, 일본경제 웃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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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와타나베 부인’들이 귀환하고 있다. 와타나베 부인은 제로 금리를 활용해 해외투자에 나서는 일본 자본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들의 귀환은 곧 일본 경제 부활의 신호일 수 있어 주목을 끈다.

 12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올 들어 두 달여 동안 해외에 투자됐던 자금 2050억 엔(약 2조3300억원)이 일본으로 되돌아왔다. 그만큼 해외 주식이나 채권을 팔아 엔화로 바꿨다는 얘기다.

 와타나베 부인들이 즐겨 한 머니게임이 바로 엔캐리 트레이딩(Yen Carry Trading)이다. 일본에서 사실상 제로 금리로 자금을 빌려 브라질·멕시코·호주 등에 왕성하게 투자했다. 한국에도 일부 들어왔다. 요즘 그들의 귀환은 바로 엔캐리 자금의 역류인 셈이다.

 와타나베 부인들의 귀환은 지난해 4분기부터 시작됐다. 로이터통신은 “엔화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한 지난해 10월 이후 넉 달 동안 그들이 판 해외 자산이 1조 엔(약 11조4000억원)에 이른다”고 전했다.

 가장 큰 요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엔저 공세다. 미국 달러와 견준 엔화 가치가 지난해 10월 이후 20% 넘게 떨어졌다. 13일 달러당 엔화 가치는 96엔 선까지 떨어졌다. 최근 3년8개월 새 최저 수준이다.

 엔화 약세는 곧바로 일본 주가의 상승으로 이어졌다. 일본 경제의 성장 엔진인 수출이 살아날 것이란 기대감에서다. 일본 주가는 지난해 11월 중순 이후 40%나 뛰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직전 수준을 회복했다. 위기의 상흔을 털어낸 셈이다.

 이런 좋은 기회를 기민한 와타나베 부인들이 놓칠 리가 없다. 그들은 1980년대 후반 거품시대에 단맛과 쓴맛을 모두 경험했다. 당시 그들의 투자 열기 때문에 신조어인 ‘재테크(財-Tech)’ ‘테마주’ 등이 만들어졌을 정도다.

 FT는 “요즘 와타나베 부인들이 해외에서 가져온 자금 중 상당 부분이 주식이나 부동산 펀드에 투자되고 있다”고 전했다. 덕분에 잘하면 일본 경제가 선순환 흐름으로 들어설 것이란 기대도 일고 있다.

 지난해 중순까지 와타나베 부인들은 악순환의 한 축이었다. ‘디플레이션(장기 물가하락)→저금리→엔캐리 트레이딩’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악화시켰다. 요즘엔 정반대다. 최근 엔화 가치 하락을 계기로 그들이 디플레 해결의 한 축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물가가 다시 오르기 위해선 소비가 늘어야 한다”며 “아베의 돈 풀기 정책으로 물가상승 조짐이 일면 와타나베 부인들이 투자로 번 돈을 쓰기 시작하고 물가상승과 경제회복이 본격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FT는 “엔캐리 청산이 일시적 현상일 수 있다”며 “일본 증권사들이 최근 내놓은 해외 투자펀드들이 잘 팔리는 것으로 봐서 여전히 해외로 나가는 와타나베 부인들도 많다”고 보도했다.

 그들의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해선 아베가 엔저 공세를 계속 펼칠 수밖에 없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다키타 요이치 논설위원은 “가계의 엄청난 금융자산이 일본 내 생산과 소비에 쓰이도록 하기 위해선 아베 총리가 ‘엔저→자산가격 상승’의 군불을 지속적으로 때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와타나베 부인들도 최근 해외 투자에서 별 재미를 보지 못해 일본 귀환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베-와타나베 부인들이 한배를 탄 셈이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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