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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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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⑦과그르다=과격하다·급하다·심하다(폭·졸폭·처)「과그르다」라는 형용사가 연면히 쓰여왔으니 청구영언이라는 영조때 나온 시조집에도 나타나는 말이며 「급히·급자기·문득」의 뜻으로 「과그리」「과글리」라는 부사 또한 오랫동안 쓰이던 말이다.
⑧굳바르다=굳고 뻣뻣하다 풍병따위로 입놀림이 부자유스럽든지 어삽한 것을 「굳바르다」라고 하였다. 「굳」은 물론 「굳다(固)」의 뜻이다. 「말씀이 굳바르며 몸이다 아프거든」『과그리 입 기울고 말씀이 굳바르거든』『어귀 굳바르고 눈을 치뜨고』와 같이 쓰였던 말이다.
⑨굽히루다=굽혔다 폈다하다·굴신하다
「또 팔과 정강이를 만지며 굽히뤄 보라』의 예가 그것이다.
⑩긁빗다=긁어빗다
긁빗기다=긁어빗기다
긁씻다=긁어씻다
긁쥐다=긁어쥐다
「그러나」라는 동사 어간에 다른 동사가 덧붙어 복합동사로 쓰인 것인데「긁싯다」만 「긁씻다」로 손질하여 쓰면 다른 것들은 그대로 쓰일 수 있는 말들이라 생각한다. 「꺾꽂이」같은 명사가 이와 같은 조어에서생긴 말이다.
⑪끊잇·끊이음=단속「긋닛이 업게하리니」「긋닛이 업게하리라」와 같이 「긋닛」은 「단속」의 뜻으로 쓰인 명사다. 「긋」은 「긋다」(단)의 어간이요, 「닛」은 「닛다」(속)의 어간으로 복합명사를 이룬 것이다. 멋이 있는 말이 없어지고 말았다. 애석한 일이다. 현대어식으로 손질하여 「끊잇」또는 「끊이음」으로 쓸 수는 없을 것인지?
⑫기리혀다=연민하다
『아비 병 들었거늘 똥을 맛보고 단지하여 써 드리니 즉시 좋아 열해를 기리혀 죽거늘』『다시 열다섯 해를 기리혀 죽거늘』과 같이 「기리혀」가 쓰였는데 「혀」는 「인」의 뜻으로 「켜」로 바뀌어간 말이다.
「치혀」가 「치켜」로, 「니르혀」가 「일으켜」로 바뀌어 간 것과 같다. 이들 예를 따른다면 「길이켜」로 될 것이다. 「돌이키다·알으키다(알리다의 사투리)」 따위의 「키다」가 모두 「혀다」에서 바뀐 말이다.
⑬기피다=깊게하다
『열우시고 또 깊이시니』의 예가 그것이다. 「높이다」가 「높게하다」의 뜻으로 쓰이므로 「깊이다」도 별 어색할 것 없이 쓰일 수 있는 말이 아닐까 한다.
「열우시고」도 「열게 하시고」의 뜻이니 「우」는 예부터 쓰여온 사동보조어간이다. 여기에서 한가지 언급해 두고자 하는 바는 고래로 「이·기·리」와 같은 보조어간은 사동으로도 피동으로도 쓰인 일이 있으나 「우·추」와 같은 보조어간은 사동으로만 쓰였지 피동으로는 절대로 쓰인 일이 없다는 사실이다.
『꽃을 보이다』는 사동이요. 『꽃이 보이다』는 피동. 『풀을 뜯기다』는 사동, 『모기에게 뜯기다』는 피동. 『노래를 들리다』는 사동, 『아름답게 들리다』는 피동과 같이 「이·기·리」는 사동·피동으로 쓰였는데 『재우다·태우다·늦추다·낮추다·맞추다』의 「우·추」는 역사적으로 사동으로만 쓰인 것이다.
그런데 최근 피동의 경우 「밝히우다·잘리우다·갈리우다·막히우다·뜯기우다·빨리우다」와 같이 「우」를 덧붙여 쓰는 일이 있는데 이것은 지양되었으면 하는 점이다.
현재 같은 「이」계통의 보조어간이 붙어 피동·사동으로 두루 쓰이는 것도 불편한데 모처럼 역사적으로 사동으로만 쓰인 보조어간「우」를 피동의 경우에 오용하는 것은 혼란의 도를 더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남광우<중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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