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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전의 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지금 서울 시내를 비롯한 각 지방에서 전기중학교의 입시원서가 접수되고 있다. 이른바 일류교를 포함한 전기중학의 입시는 동심을 채찍질하면서까지 6년동안 쌓은 형설의 겁을 마지막 가늠하는 것으로, 당자는 물론 부형이나 자모의 마음이 초조롭고 어지러운 것은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흔히 자정 가까운 밤길을 거니노라면 국민학교 6학년으로 보이는 어린이들이 가방을 든 어깨를 늘어뜨리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말도 없이 집으로의 걸음을 재촉하는 모습들을 본다. 지칠대로 지쳐 보이는 밤 어둠 속의 어린이들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추세인 듯 하다.
부형이나 자모들의 일류교 병의 희생이라고도 할 어린이들도 이제는 6학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5학년 4학년으로 내려가서 그 병세는 뿌리를 해마다 더 깊이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나머지 공부하는 시간과 양은 국민학교가 으뜸이고 상급학교에 갈수록 반비례하고 있으니 도식하자면 여느 나라들과 전혀 반대인 도삼각형이라 하겠다.
속담에 『10연의 계는 나무를 심는데 있고 백년의 계는 사람을 가꾸는데 있다』고 했다. 사람을 가꾼다는 것은 곧 교육한다는 말로도 될 것이라면, 그 목적은 어디까지나 국가·사회가 청하는 사람으로서의 능력을 개발해야 할 것이고 또 그것을 형성할 주체로서의 「인간」을 가꾸는데 있어야할 것이다.
우리 나라 어린이들이 「인간」을 형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과정이라고 할 6년간의 의무교육기간이 내내 중학교입시의 작대기 지식을 주입받는데 시종된다면, 또 중·고교, 대학에서 마저 그 노릇이 거듭되고 있는 실정에서, 그들로부더 어찌 사인으로나 공인으로서의 깊이 있는 자각과 사회적인 지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상급교에 못 가는 어린이들의 처지는 무엇으로 구제할 심산인가.
당국자들에게 10연이나 백년의 계는 두고라도 「목전의 계」라도 있다면 하늬바람 휘몰아치는 어둠의 거리를 지쳐 헤매는 어린이나 숫제 진학을 단념한채 의무교육에서 소외된 어린이들의 모습을 「한눈」이라도 보라고 일러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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