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휴먼 네이처' 현대인 모순 조롱

중앙일보

입력

'휴먼 네이처'(Human Nature) 는 무겁게 생각하면 어렵게만 느껴지고, 가볍게 생각하면 폭소를 터뜨릴 수 있는 독특한 영화다. 그렇지만 일단 웃음에 우선권을 두고 보는 게 포인트다. 허를 찌르는 독특한 발상과 재기발랄한 화면이 넘실대기 때문이다.

'휴먼 네이처'는 영어로 인간의 본성이란 뜻. 성욕.식욕.수면욕 등 인간의 원초적 본능 가운데 성욕을 주목했다.

그리고 그 대척점은 문명이다. 양자(兩者) 의 극단적 대립에서 터져나오는 웃음의 전염력이 대단하다.

영화의 히로는 감독.배우보다 극작가다. 1999년 다른 사람의 뇌 속에 들어가 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성관계도 하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각광을 받았던 '존 말코비치 되기'의 찰리 카우프만이 대본을 썼다.

전작보다 위트의 칼날이 다소 무뎌지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주는 부분도 있지만 카우프만은 이번에도 현대 문명과 현대인의 모순을 마음껏 조롱한다.

영국 출신의 동물 행동학자 데스먼드 모리스의 저서 '털없는 원숭이'는 이번 영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모리스는 1백93종에 달하는 원숭이 가운데 가장 번식력이 왕성하면서도 성적으로 혼란스런 상태에 놓여있는 인간을 '털없는 원숭이'로 정의했다.

'휴먼 네이처'는 '털있는 원숭이'와 '털없는 원숭이'의 싸움터다. 영화는 이들 두 '종족'간의 투쟁, 즉 자연스런 성욕을 옹호하는 인간과 문명의 세련됨을 주장하는 인간간의 전투라는 이분법적 플롯에 기대면서도 그들 사이에서 빚어지는 갈등을 매우 촘촘하게 짚어나간다. 단순함 속에 내포된 복잡함을 건드리는 것.

주요 등장인물은 세 명이다. 호르몬 이상 분비로 온몸에 털이 자라는 여자 라일라(패트리샤 아퀘트) , 식사 에티켓을 목숨처럼 중요하게 생각하는 동물학자 나단(팀 로빈스) , 그리고 숲속에서 원숭이처럼 성장한 야성인간 퍼프(리스 이판) 가 그들.

영화는 이들의 밀고 당기는 사랑 방정식을 통해 성을 자유롭게 소비하는 원시적(혹은 자연적) 삶과 성의 억제를 미덕으로 삼는 현대적(혹은 문명적) 삶을 대비시킨다.

다른 사람들처럼 살고 싶어 몸에 난 털을 레이저 수술로 태워대는 라일라, 작은 성기에 콤플렉스를 느끼다가 라일라를 만나 자신을 찾은 나단, 그리고 나단에게 포로로 잡혀 ''문화인'훈련을 받는 퍼프가 교대로 얼굴을 내밀며 "자, 당신은 이들 가운데 어떤 유형의 삶을 살 것는가"는 식으로 질문한다.

특히 미국 의회 청문회장에 선 퍼프의 마지막 발언이 인상적이다.

"야성으로 돌아가겠다, 자유롭게 살겠다"고 선언한 그는 옷가지를 하나하나 벗어던지고 그가 자랐던 숲속으로 발길을 옮긴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인 루소나 19세기 미국 초월주의 작가인 소로를 보는 듯하다.

비유컨대 문명에 대한 자연의 승리? 하지만 미셸 곤드리 감독은 전혀 예상 못했던 반전을 삽입하며 그 어느 쪽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 노련함을 보여준다. 최종 선택은 결국 관객의 몫.필요 이상으로 빈번하게 등장하는 억지스런 번역이 거슬린다.

18세 관람가. 25일 개봉.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