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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책·클래식·미술은 KBS의 천덕꾸러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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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은화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요즘 방송가엔 겨울바람보다 매서운 개편 바람이 불고 있다. 이 바람에 존폐의 위기에 놓인 프로그램이 있다. 주로 문화·교양 프로그램들이다.

 KBS는 13일 열릴 이사회에서 1TV의 ‘즐거운 책읽기’와 ‘클래식 오디세이’ ‘TV 미술관’ 폐지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세 프로그램은 매주 수·목·금 심야시간대(밤 12시 40분)에 방영됐다. 익명을 원한 KBS 관계자는 “이사회 안건에는 이 셋을 묶은 성격의 ‘문화와인(가칭)’이라는 프로그램을 신설해 일주일에 한 번 방송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했다. 외주제작사에 해당 프로그램을 맡기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이를 두고 내부 반발은 거세다. 지상파 방송 중 유일하게 책·클래식·미술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크다. ‘즐거운 책읽기’와 ‘클래식 오디세이’의 경우 13~14년째 방송하고 있는 지상파 대표 교양문화 프로그램이다. 특히 ‘문화와인’이 볼거리가 많은 공연이나 뮤지컬 위주로 제작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의 폐지론이 대두된 것은 물론 시청률 때문이다. 셋 모두 시청률은 1% 안팎이다. 드라마·예능에 비해 책과 클래식, 미술 이야기는 아무래도 심심할 게다. 특히 ‘즐거운 책읽기’의 경우 13년간 수많은 생사의 위기를 오갔다. 2001년 ‘TV 책을 말하다’로 시작한 방송은 한 차례 폐지됐다, 2009년 ‘책 읽는 밤’으로 부활했고 다시 ‘즐거운 책읽기’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 우여곡절 속에서 변하지 않은 것은 심야시간대 편성이다. 밤 11시대 방송에서 새벽 시간대로 더 후진 배치됐을 뿐이다. “없애자니 공영방송의 면이 안 서고, 두자니 눈엣가시 같으니까 늘 사각시간 대에 두고 홀대하는 것”이라는 내부 지적에 공감이 간다.

 시청률이 저조하지만 그래도 시청자는 있다. 폐지 위기에 놓은 프로그램들은 TV에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작가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림을 보고, 다양한 클래식 연주자를 만날 수 있는 창구였다. 다양성과 공익성을 내세우는 KBS가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굳이 순수문화 보호론을 주장할 뜻은 없다. 그래도 문제는 책·음악·미술이란 장르상의 한계가 아닐 거다. 이를 보다 즐겁고, 유쾌하게 꾸려가는 제작진의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한은화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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