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강남 특별구] 4·끝 그들이 사는 방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강남은 다르다'.

전문가들은 서울 강남 사람들의 보편적인 정서가 '차별 의식'이라고 말한다. 풍요로움의 상징인 서울 강남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생활방식을 추구한다는 것.

그 차이는 옷 입기에서부터 드러난다. 젊은 세대에서는 옷차림으로 강남과 강북의 경계선이 그어진다. 강남 중.고생들은 미국 사립고등학생 패션으로, 20.30대는 비싼 명품 패션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강남 사람들은 미국 등 선진국의 유행과 생활방식을 좇아가는데 적극적이며, 건강.미용.음식 등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최근 압구정동과 청담동 일대에 외국 휴양지에서나 찾아볼 수 있던 '스파(spa)'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강남의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서구식 '스탠딩 파티'가 유행하는 것이 단적인 예다.

상지대 사회학과 홍성태 교수는 "고급 소비를 통해 자신을 차별화하는 강남족의 생활방식은 한국식 자본주의의 일그러진 면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 '브랜드(상표)'신봉=1년 전 서울 강북의 마포에서 강남구 대치동으로 이사온 고교 1학년 金모군은 두 달 만에 옷과 신발이 거의 바뀌었다.

강북에서 입던 복고풍 바지를 치우고 '폴로'면바지와 '닥터 마틴'구두, '나이키'운동화를 새로 장만해야 했다.

金군은 "폴로는 대치동 중.고생 사이에서 거의 유니폼이 됐다"며 "나이키 운동화도 아직 수입되지 않은 20만원이 넘는 미국 신제품을 인터넷으로 구입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말했다.

강남족 패션의 특징은 옷 자체보다 브랜드를 더 따지는 것.

동덕대 의상학과 최현숙 교수는 "타 지역 사람들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들의 위치를 자리매김하는 강남 사람들은 동일한 스타일과 브랜드를 공유함으로써 심리적 안정감을 얻는다"고 설명했다.

◇ 건강.미용.맛에 아낌없는 투자=서울 청담동에 사는 李모(여.28)씨는 최근 집 근처 스파에서 매주 한번씩 전신 마사지를 받는다. 10회 비용이 1백50만원이지만 감수할 만하다는 게 李씨의 생각이다.

서울 압구정동.청담동 일대에는 손톱.화장.피부관리 등 토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형 뷰티숍들도 수십 곳이 성업 중이다.

서울 소재 성형외과 2백20개 중 무려 64%인 1백40개가 강남.서초 지역에 몰려 있다. 피부과는 2백13개 중 33%인 71개가 이 지역에 있다.

이 지역 유명 음식점들은 점심 때면 모임을 갖는 여성들로 넘쳐난다. 멀지 않은 남한산성.하남시 등의 식당으로 원정을 가기도 한다.

최근 유행하는 인도.베트남 등 동남아 음식과 그 이전에 유행된 퓨전음식이 모두 강남에서 시작됐을 만큼 강남 사람들의 음식 챙기기는 각별하다.

식도락이든, 자녀 교육이든, 집안 살림이든 뭐든지 최고로 하고 싶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 '끼리 끼리'어울린다=7년간 서울 반포동에 살다가 지난해 경기도 과천으로 이사간 주부 金모(46)씨는 이사를 간 뒤에도 주소를 옮기지 않았다.

두 아이 모두 대학에 진학해 이사를 가긴 했지만 '강남 사람'으로 남고 싶었기 때문이다. 金씨는 과천에서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

"강남에서 밀려난 느낌이 싫어 강남에 있는 스포츠센터를 다니며 그곳 친구들 하고만 시간을 보낸다"는 게 金씨의 설명이다.

강남 지역에서는 소득.학벌 등이 비슷한 학부모들이 초등학생 때부터 아이들을 서로 묶어주는 것이 유행이다. 이 아이들은 생일 파티도 같이 하고 과외나 학원, 주말 축구교실 같은 취미활동도 함께 다닌다.

주민 崔모(35.여)씨는 "아이들이 시집.장가 갈 때까지 강남에 살 생각"이라고 말한다.

이런 현상에 대해 상지대 홍성태 교수는 "강남 사람들의 차별의식이 다른 지역 사람들과의 위화감.이질감을 조성하게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 어떤 특징을 가진 사람들이 사나=강남.서초 2개구에 사는 '강남 사람'들은 서울의 다른 23개구 주민들과는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우선 대졸 이상 학력을 가진 사람들의 비율이 강남.서초구는 32.3%로 다른 구의 평균 25.4%에 비해 월등히 높다.

직업으로는 의사.변호사.회계사.정치인.고급 공무원.사업가.교수.대기업 임직원 등 전문직이나 선망 직업 종사자들이 많다.

서울 거주 국회의원 1백70명 중 37%인 62명, 장.차관급 고위 공직자 44명 중 39%인 17명이 강남에 사는 것으로 조사됐다.

1990년대 이후 '오렌지족''야타족''캥거루족''청담족''연어족''황금족''대치족' 등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강남에서 등장했다.

이성에게 오렌지를 건네 만남을 가졌다는 '오렌지족'은 오래 전의 얘기가 됐다. 외제 승용차 등을 타고 연인을 유혹한 '야타족'도 강남이 본적이다. 부모의 도움을 받아 상류생활을 하는 '캥거루족'도 강남에 많이 둥지를 틀고 있다.

청담동의 카페.의상실.뷰티숍을 무대로 고급 문화와 패션을 즐기는 '청담족'이라는 용어도 강남 문화를 대변한다.

외환위기 사태 당시엔 고금리로 호황을 누리던 현금 보유 특권 계층인 '황금족'도 등장했었다. 수백만원 짜리 속옷을 사입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외국에서 살다 돌아온 '연어족'들은 강남에 서구풍을 유행시켰다.

학원을 보고 이사온 '대치족'도 늘고 있다.

쇼핑.의료.주차.헬스센터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노후를 이곳에서 보내겠다는 '노후족'도 생기고 있다.

이러다보니 강남엔 유명 연예인들도 많이 산다. 청담동은 최근에 '뜬' 동네답게 차승원.이정재.정우성.전지현.류시원 등 신세대 스타들이 많이 산다.

잠원동엔 이영하.선우은숙, 유동근.전인화, 최수종.하희라, 최진실.조성민 등 커플을 비롯해 한석규.김수미.도지원 등이 산다. 방배동에는 이미연.이덕화 등의 집이 있다.

그러나 姜모(58.강남구 개포동)씨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반인들 생각과 달리 강남엔 직장 생활을 꾸준히 한 평범한 사람들이 더 많다"며 "이곳을 너무 왜곡되게 묘사하면 계층간의 위화감만 조성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한천수 사회전문기자(팀장)
이장직.유지상.정재왈.
박지영.박현영.김현경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