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봉 동화 '오세암' 애니메이션으로 살아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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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해 우리 영화계에는 '엽기'와 '조폭'의 행진이 이어졌지만 국산 애니메이션은 좀 다른 길을 택한 듯하다. 키워드는 순수와 감동.

최근 개봉한 이성강 감독의 '마리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이 추세는 올해도 이어져 올 가을 개봉될 고 정채봉의 동화(1984년) 를 원작으로 한 '오세암'에서도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주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열린 '오세암'제작 발표회에서 그 흐름이 확인됐던 것.

'오세암'은 TV 시리즈 '하얀 마음 백구'팀(기획 이정호.감독 성백엽) 이 독립한 마고21에서 제작한다고 해 기획 단계부터 관심을 끈 작품이다.

현재 SBS-TV에서 재방영 중인 '하얀 마음 백구'는 게임으로도 만들어져 높은 인기를 누렸으며 비디오.DVD도 발매됐다. 말하자면 '원 소스 멀티 유스'전략을 충실히 시행한 모범 사례인 셈이다. 마고21은 앞으로도 초등학생을 주 관객으로 하는 가족용 애니메이션을 전문으로 제작할 참이다.

티 없이 곱고 맑은 진돗개 백구의 이야기인 전작처럼 '오세암'도 '모범적'인 내용이다. 무대는 설악산의 암자 관음암. 다섯살 소년 길손이와 앞 못보는 누이 감이가 스님들과 산사 생활을 시작한다. 부모 없는 길손이가 관음보살이 그려진 탱화를 보며 엄마를 그리워하다 관음보살과 함께 파랑새가 되어 날아간다는 줄거리다.

제작진은 화면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두 차례의 현지 답사를 통해 가을부터 초봄까지 설악산의 정경을 필름에 담아왔다.

현재 50% 가량 진행된 '오세암'은 '작은'영화다. 내용도 이렇게 소박하지만 외형적인 규모도 거품을 줄였다. 제작비는 마케팅비 5억원을 포함해 20억원 남짓. 한달 간 극장 개봉을 한 뒤 소수 전용관에서 장기 상영을 통해 관객들에게 2년여의 준비를 거친 국산 애니메이션의 웅숭깊은 맛을 보여주겠다는 포부다.

이날 상영된 파일럿 필름에 대한 애니메이션인들의 평가는 비교적 긍정적이었다. 혁신적인 영상은 아니었지만 원화.동화를 셀로 작업하고 이를 스캔받아 디지털로 후반 작업을 하는 기법은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는 지적이었다.

디지털 작업은 전체적인 색감을 수채화처럼 맑으면서도 안정된 톤으로 유지시켰다. 국악그룹 슬기둥이 작곡.연주한 삽입곡도 '히트 예감'을 더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마리 이야기'에서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밋밋한 이야기'라는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원작이 동화인 데서 오는 한계다.

이정호 대표는 "일방적으로 감동을 강요하기 보다는 코믹한 장치를 통해 관객들이 감정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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