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급성장 속에 부패·추문 잇따라 … 리베이트 관행이 뇌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13호 26면

수입자동차 업계의 고질적인 부패와 추문이 도마에 올랐다.

아우디코리아 임원 해고 계기로 본 수입차 업계 논란

최근 투서로 촉발된 아우디코리아의 한국인 임원 해고뿐 아니라 수입차 전체에 대한 각종 파문 등과 관련해 해외 본사들이 잇따라 한국 지사에 대한 감사를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입차 업계에 추문이 많은 것은 매년 수백억원의 마케팅ㆍ세일즈 비용 때문이다. 쓰는 돈의 규모에 비해 감사 기능이 부실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동안 수입차는 승승장구했다. 지난해 연간 판매는 13만 대를 넘어섰다. 2001년 7747대에서 2002년 1만 대를 넘어선 뒤 급성장했다. 경차를 뺀 국내 승용차 시장 점유율이 20%에 육박한다. 10년 전만 해도 수입차 주고객은 강남 부자로 대표되는 연소득 2억원 이상의 상류층이었다. 2008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중산층을 파고들어 대중화됐다. 가격도 7000만원이 넘는 고가차 위주에서 국산 중ㆍ대형차보다 20% 정도 비싼 3000만∼6000만원대 모델이 전체 판매의 80%를 넘어섰다.

아우디 사태, 법정 공방으로 확산될 듯
지난달 28일 최연소 수입차 업계 여성임원이던 아우디코리아 마케팅 이사 A씨가 해고됐다. 지난해 11월 아우디 딜러 소속 전 간부가 e메일로 투서를 보낸 데서 비롯됐다. 당시 트레버 힐 사장은 내부 조사를 한 뒤 ‘처신 잘못’ 정도의 징계 사안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에 부임한 지 한 달 정도 된 독일 출신 재무담당 임원(CFO)이 본사 감사팀에 이 사실을 전하면서 확대됐다. 투서 내용은 A씨가 이벤트 대행사로부터 수년간 수십억원을 착복했다는 것이다. 회사 측은 지난해 말 A씨에게 대기발령을 내고 본사 감사팀이 나와 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특별한 착복 비리를 찾아내지 못했다.

업계에서는 투서의 상당 부분이 내부 직원이 아니면 알 수 없다는 점을 들어 해묵은 관행인 세일즈와 마케팅의 알력 다툼에서 벌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은퇴한 수입차 업체의 한 관계자는 “연간 수백억원의 비용을 쓰는 마케팅과 세일즈 부문이 자주 충돌하면서 서로 음해가 난무한다”고 말했다. A씨는 2004년 아우디코리아 설립 이전부터 호텔 등 홍보업계에서 인재로 꼽혔다. 그는 럭셔리 마케팅을 통해 아우디 판매를 정상권으로 끌어올렸다. 독일 본사에서도 이씨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며 2010년에는 글로벌 인재로 뽑혀 교육을 받기도 했다. 당시 이런 성공 스토리를 담은 책까지 내 화제가 됐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이를 시기하는 시선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의 강한 추진력 때문에 마찰이 잦고 부하 직원들이 힘에 겨워 그만두는 등 ‘내부의 적’도 많았다”며 “외국 회사라고는 하지만 ‘잘나가는’ 여성 임원에 대한 시기(?)도 상당 부분 작용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A씨는 “부당하게 해고됐다”며 소송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회사 측은 “추가로 발견된 부정이 많아 법적 대응에는 문제가 없다”며 평행선을 달린다.

현재 독일에서 감사팀이 다시 와 A씨 이외에 다른 부서까지 감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 업체의 한 직원은 “회사 전체가 비리로 도배될까 걱정”이라며 “아우디코리아 본사가 있는 청담동은 요즘 봄이 아니라 영하 20도”라고 말한다.

한편 이 회사는 이달 1일부로 신임 마케팅담당 임원에 독일인인 요그 디이츨 이사를 선임했다. 회사 측은 “디이츨 이사는 유럽ㆍ홍콩 등지에서 각종 기업의 홍보를 담당했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라고 설명했다.

폴크스바겐코리아는 2011년 독일 감사팀이 감사를 했다. 당시 시승차 매각 과정에서 담당자와 중고차 업체가 결탁한 것이 발각됐다. 시세보다 수백만원 싸게 팔고 그만큼을 중고차업자로부터 돈을 돌려받은 것이다. 담당자는 이후 해고됐다.

수입차 업계의 또 다른 고질적인 문제는 학력 위조다. 아우디와 벤츠코리아는 2007년 두 사람을 갑자기 해고했다. 버젓한 미국대학 졸업장을 제출, 채용돼 수년간 근무했지만 어학연수를 학위로 위조한 게 드러났다. C사의 경우 2006년 차장급 인사가 미국 출장 길에 제동이 걸렸다. 비자가 안 나와 조사해 보니 해외 범죄 기록이 원인이었다.

이런 학력이나 신상 위조는 아우디뿐 아니라 BMW·폴크스바겐도요타·볼보 등 대부분 수입차 업체에서 되풀이되는 고질병이다. 오죽하면 한 회사는 이런 문제로 해고된 사람을 검증 없이 경력으로 채용해 ‘재활용 센터’로 불린다.

수입차 업계는 외국인 사장과 본사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해 영어 능력이 중요하다. 따라서 교포나 외국 대학 졸업생을 선호한다. 문제는 인사부 기능이 미약해 제출한 졸업증명서와 경력을 자체 검증할 수 없다는 게 수입차 업계의 공통된 호소다.

수입차 업계에서 가장 많은 100명의 직원이 있는 BMW코리아의 인사 담당은 임원을 포함해 세 명뿐이다. 한 인사담당자는 “해외 대학에 전화나 e메일로 문의하기 어려워 제출한 졸업장을 믿을 수밖에 없다”며 “입사 수년이 지났지만 사본만 제출한 경우도 여럿 있다”고 말한다.

수입차 업계에 내려오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인증 레전드’다. 업계에서 신차 인증(안전 및 배출가스 등)은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한 유럽계 업체에서 2009년 생긴 일이다. 이 회사는 수입차 업체 가운데 가장 많은 한 해 20종이 넘는 신차를 내놓는다. 회사 담당자가 국내 인증기관에 소위 ‘접대’를 한다며 매년 법인카드로 수천만원씩을 사용한다. 회사 측은 관행적으로 공무원 접대에 쓴다고 하자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고 한다. 이 담당자는 수년 동안 접대 비용을 부풀리거나 속칭 ‘카드깡’을 통해 억대의 돈을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 이 담당자가 퇴사하고 후임자가 오면서 이런 사실이 발각됐다. 회사에서는 법적 책임을 물으려 했지만 금액이 너무 크자 후폭풍을 우려해 ‘없는 일’로 처리했다. 하지만 매달 수입차 인증 담당자들이 모이면서 이 소문은 확대됐다. 그래서 인증 담당을 잘(?)하면 추가로 연봉 1억원이 생긴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다.

내비게이션 대당 10% 리베이트는 기본
신차 인증이 끝난 후 수입차에 꼭 장착해야 하는 장비가 내비게이션이다. 본사의 입김 없이 국내 메이커와 협상해 장착할 수 있다. 수입차용 내비게이션을 장착해주는 업체는 대여섯 군데에 불과해 자연스럽게 이들과 유착관계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대당 공급가가 100만원 전후로 시가보다 높아 리베이트가 관행이 됐다고 한다. 내비게이션 업체의 한 관계자는 “룸살롱 접대는 기본이고 뒷돈을 주지 않으면 아예 계약 성사가 어렵다”며 “5∼10%의 리베이트는 업계의 기준”이라고 말했다. 이런 리베이트로 인해 수입차 업체 담당자가 비리로 적발돼 해고된 경우가 10건이 넘는다. 회사 내부에서는 내비게이션 선정 이권이 크다 보니 세일즈와 애프터서비스(AS) 부서가 서로 관련 업무를 맡으려고 경쟁할 정도라고 한다.

이런 추문에도 불구하고 수입차 업체는 영어 잘하는 20, 30대에게는 최고의 직장으로 손꼽힌다. 대부분 자동차 자체가 좋아서 오는 사람들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엄청난 활동 비용을 쓸 수 있는 마케팅 부서를 선호한다.

감사나 인사 검증 시스템 부재로 인해 ‘일이 터지고도 덮고 마는’ 관행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크다.

대기업에서 수입차 업체로 전직한 C씨는 “뿌리 깊은 사내 부정부패 이야기에 질린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며 “문제가 생기면 덮는 수입자동차 업체의 관행을 바꿔 징계 정보를 확실하게 공개하면 업계에 이런 추문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