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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렐라 주~욱 건져 짜기만 하면 디젤이 줄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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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호 29면

30년 전만 해도 목욕은 연중행사였다. 동네에 한두 개 있는 목욕탕에 1년에 한두 번쯤 ‘명절 맞듯’ 다녀오곤 했다. 여의치 않으면 솥단지처럼 생긴 커다란 쇠통에 장작불을 피우고 물을 데워 목욕했다. 지금은 아침저녁 뜨거운 물로 샤워한다. 가히 천국이다. 그러는 사이 개인당 에너지 소비율이 5배나 늘었다. 중동 석유로 누리는 호사, 하지만 얼마나 더 누릴 수 있을까.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② 바다의 선물, 바이오 디젤

이른바 지구온난화 시대다. 대기를 채우는 이산화탄소의 균형이 깨지고 대기온도가 오른다. 산업화 이전에 비해 45% 이상 늘어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대기 농도를 300ppm에서 380ppm으로 30% 더 진하게 만들었다. 지구라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인간이 석유와 석탄으로 불을 피우기 시작한 까닭이다. 덕분에 겨울에도 춥지 않고 제주 감귤을 남해안에서, 경북 상주의 사과를 강원도 평창에서 수확한다.

지구는 태양 덕에 산다. 자동차의 휘발유나 공장 보일러에 쓰이는 디젤유 모두 태양의 선물이다. 하지만 앞으로 50년이면 이런 원유도 바닥나는 상황이 온다. 그런 위협이 우리를 조이기 시작한 지도 오래됐다. 우리나라는 세계 10위의 에너지 소비 국가, 7위의 석유 수입 국가이며 수입 의존도는 97%다. 국내 소비 에너지는 160MToe(100만t 오일에 해당하는 에너지)이고 그 에너지의 50%를 석유가 차지한다. 대한민국은 에너지의 절반을 비싼 돈을 주고 수입하는 석유에서 얻는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온난화 가스인 이산화탄소도 줄이고 에너지 고갈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원자력은 이런 의미에서 매력적이다. 이산화탄소도 배출하지 않고 전력 생산비도 kW당 35원으로 677원의 태양광, 110원인 풍력보다 훨씬 싸다. 하지만 문제는 안전이다. 내진 설계를 자랑하던 일본의 후쿠오카 원전과 그 일대가 쓰나미 한 방에 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처럼 불모의 땅이 돼 버렸다. 아예 일본산 생선과 고기를 꺼릴 정도로 후유증은 크다. 좁은 땅에 원자력 발전소 20개가 오밀조밀 몰려 있는 우리나라는 이런 자연재해에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갑자기 내진 설계 데이터가 궁금해진다. 게다가 ‘불타는 연탄재’로 비유할 수 있는 방사능 폐기물 문제도 원전만큼 어려운 숙제다. 독일은 2022년까지 원자력 자체의 폐기를 심각히 고려 중이다.

바다에서 배양한 미세조류에서 바이오 디젤을 생산해 수송용 연료로 사용될 날을 기대한다. 일러스트 박정주

요약하면 화력발전은 온실가스 배출과 줄어드는 원유로 장래가 불안하고, 수력 발전은 이미 포화 상황이며 원자력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다. 현재 우리가 쓰는 모든 에너지원들이 허덕이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 50년 내에, 지금 20대가 결혼해 낳은 자식들이 20대로 클 때까지는 뭔가 결판을 내야 한다. 줄어들지 않고 계속 쓸 수 있는 신재생 에너지가 절실하다. 그 신생 에너지는 최소한 태양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태양열, 풍력, 그리고 바이오 에너지가 현재로선 각광받는 대체 주자다.

태양열 발전은 매력적이다. 태양만 쬐면 전기가 생산되는 태양열 기판이 이미 개발돼 있다. 친구의 건물 옥상에도 태양 전지판이 깔려 있는데 수요를 충당하고도 남는 전기는 한전에서 사 간다고 흐뭇해한다. 하지만 현재의 태양 전지는 너무 비싸 계속 수지를 맞출 수 있을까 걱정스럽다. 전력 생산비가 원자력의 20배, 풍력의 3배인 데다 흐린 날엔 가동이 안 되고 본격 생산하려면 부지도 넓어야 한다. 1000MWh 전기를 원전으로 생산하는 데 상암 월드컵 경기장 크기의 부지가 필요하다면 태양광엔 이런 부지 150개가 필요하다. 고속도로 변이나 옥상 등 가능한 모든 곳을 동원한다 해도 한반도는 좁은 땅의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다.

풍력의 경우 한국에서 가장 바람이 많다는 대관령의 거대한 풍력 발전 프로펠러가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풍력 발전소도 부지가 부족하고 바람에 의존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같은 에너지를 만들려면 태양광보다 3배나 넓은 부지가 필요하다. 제주도 연안의 바다에 서있는 풍력 발전기도 이런 노력의 하나다. 산·벌판·바다에 큼지막하게 들어찬 프로펠러가 이국적이긴 하지만 대관령 선자령 등산길에 발전기 프로펠러 소리에 시달리다보면 공장 소음 복판에 서 있는 것 같아 환경 파괴 논란이 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온난화 문제의 핵심은 석유 연소 후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로 온실효과가 발생하는 데다 그 석유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답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자연의 순환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자동차 대신 마차를 탈 수는 없고 목욕을 명절에 한 번만 할 수도 없다. 정답은 산업화에서 발생되는 이산화탄소를 잡아 이를 에너지원으로 삼는 것이다. 구체적인 해결책은 식물의 광합성에 있다. 대기에 방출된 이산화탄소의 4분의1을 열대 우림이 흡수한다. 나무를 더 많이 심어 열대 우림을 만들면 된다. 하지만 브라질 열대우림마저 산업화로 줄어드는 판에 산림을 더 늘리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럼 나무들이 빨아들이지 못한 나머지 이산화탄소는 어디로 갈까.

바다다. 바다의 해수와 지하 퇴적물 속엔 지구 전체 탄소의 93%가 저장돼 있다. 대기에 방출된 가스의 30%를 바다가 빨아들이는데 그 주인공이 미역, 다시마, 클로렐라 같은 해조류다. 지구에서 일어나는 광합성의 55%를 이런 해조류들이 맡는다. 브라질의 열대 우림이 지구의 허파라는 찬사를 받고 있지만 숨은 진짜 일꾼은 조류인 셈이다. 게다가 다시마는 빛의 에너지를 이용해 이산화탄소로 녹말을 만드는 광합성 효율이 나무의 2배나 된다. 식탁에 오른 다시마가 다시 보인다.

조류(algae)는 강물의 녹조 같은 담수 조류와 바다의 해조류(seaweed)로 구분되고 해조류는 다시 미역, 다시마 같은 거대조류 (macro-algae)와 클로렐라 같은 미세조류 (micro-algae)로 구분된다. 이 중 에너지 문제에 중요한 해결사로 등장한 선수는 미세조류다. 현미경으로만 보일 만큼 작은 미세조류는 가끔 적조라는 오명을 띠고 매스컴을 탄다. 햇살 쨍쨍한 늦은 여름, 질소나 인 등의 영양물질이 풍부한 오염된 강이 바다를 만나면 붉은 적조가 금세 바다를 덮는다. 이런 종류의 미세 조류는 이산화탄소를 탄소원으로, 태양을 에너지원으로 해서 금방 세포를 두 배로 늘리면서 세포 내에 여러 물질을 저장한다. 바로 여기에 인류 에너지의 미래를 위한 열쇠가 들어 있다. 어떤 조류는 자기 몸의 80%까지 오일을 저장할 수 있고 이 오일로 디젤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석유 대신 쓸 수 있다면 이산화탄소로 디젤 연료를 만들게 된다.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이상적으론 클로렐라가 바다의 적조처럼 빠르게 자라고 그 안에 기름이 꽉 차는 것이다. 그물로 주~욱 건져 짜기만 하면 디젤이 줄줄 흘러내린다. 바다의 유전이다. 이론적으로 안 될 게 없다. 지금도 캘리포니아의 광대한 해안에서는 이미 미세 조류가 상업용으로 배양되고 있다.

축구장만 한 연못에 20㎝ 깊이로 바닷물을 채우고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약간의 질소, 인 등 영양분을 공급하면 미세 조류는 광합성을 하며 성장한다. 지금까지는 클로렐라 같은 건강 보조식품 생산이 위주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야외에서 ‘바이오 디젤 조류’를 배양하면 대규모 생산이 가능하고 가격도 싸게 할 수 있다. 과연 지금 L당 1000원인 디젤 가격과 경쟁이 될 만한 수준까지는 될 수 있을까.

미세 조류에 의한 바이오 디젤 생산 방법은 타임지가 ‘20대 유망 기술’로 선정할 만큼 환경친화적이며 상업화 가능성이 높다. 바이오 디젤 연구는 국내 유수 경제연구원이 ‘바이오 시밀러(바이오 항암제)’ ‘의료 자가 진단 서비스’와 함께 ‘지금 투자해야 할 3대 바이오 사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미세조류는 현재 바이오 디젤의 원료인 팜유보다도 면적당 생산성이 20배나 높다. 짧은 시간에, 고농도로, 많은 오일을 생산할 수 있는 미세 조류의 특성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연안의 자연 생산이나, 육지에서의 인공 생산에 관계없이 생산성을 더 높여야 하는 게 성공의 과제로 남아있다. ‘디젤 조류’를 집중 연구해 현재의 낮은 광합성 효율을 실험실 최고 결과인 5~6%를 넘어 이론상 최고치인 30%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또 기름을 짜고 남은 미세 조류를 활용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만하다. 화장품 산업에서 ‘기름을 짠 디젤 조류’를 재활용할 수도 있다. 미세 조류는 미역, 다시마 같은 거대 조류보다 훨씬 다양해 무려 5만 종이나 되는데 다양성을 활용해 이미 14개의 신약이 만들어졌고 4개는 상용화됐다. 그런 식으로 미세 조류의 용도를 다양화해서 얻는 수입을 ‘바이오 디젤’의 단가 인하에 활용하는 것이다.

바이오 디젤의 생산 단가는 현재 기술로는 시중 디젤의 3~5배 수준이라 경제성도 없고 미래도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오늘날 지구의 두 문제인 온난화와 석유 고갈을 동시에 해결할 거의 유일한 방법은 바이오 디젤뿐이다. 바다가 주는 선물을 받기 위해 배수진을 쳐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 것 같다.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국제SCI급 논문 110편과 40여 건의 특허를 갖고 있다. 한국과학창의재단 STS사업단에서 바이오 콘텐트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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