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가족경영, 로스차일드가엔 양 날의 칼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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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기업의 성패는 전문 경영진을 어떻게 육성하고 유지하는가에 달려 있다. 유럽 최대의 부호로 이름을 떨쳤던 로스차일드 가문은 가족경영이란 폐쇄적인 방식 때문에 유럽 최대 투자은행 자리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사진은 1960년대 회사 집무실에 모여 앉은 로스차일드 가족들. [사진 21세기북스]

전설의 금융가문 로스차일드 1,2
니얼 퍼거슨 지음, 윤영애·박지니 옮김
21세기북스 ,각 권 660쪽·862쪽
각 권 3만5000원·3만 8000원

지난 10년 동안 한국정부의 금융정책 목표 중 하나는 대형투자은행 육성이었다. 정부와 언론은 한국의 증권사와 서구의 투자은행을 규모를 비교하면서 대형 투자은행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200년에 걸친 서구 투자은행업의 역사를 무시하고, 투자은행업의 핵심경쟁력을 도외시한 주장에 불과하다.

 현존하는 투자은행중 가장 오래된 회사가 로스차일드다. 그런데 이 기업은 지금까지도 가족기업이다. 로스차일드가 2010년 나이젤 히긴스를 새 지도자로 선임했다. 이는 그 가문이 투자은행업을 시작한지 20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다른 투자은행들도 마찬가지여서 대부분 가족기업, 또는 파트너십으로 운영했다. 주식회사로 전환한 것은 비교적 근래의 일이었고 대형화는 그야말로 최근의 일이다.

 이 책은 그 로스차일드 가문에 대해 하버드대 역사학자인 니얼 퍼거슨이 요즘처럼 대중적으로 유명해지기 전인 1998년에 쓴 책이다. 금융사에서 기념비적인 저작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이 책은 한편으로는 비밀과 소문에 쌓여있던 이 금융 가문의 역사를 가족 기록 보관소에 있던 옛날 내부문서를 토대로 밝히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를 통해 유럽의 투자은행과 국제금융 시장 발달 과정을 자세히 보여준다.

 18세기 말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금융업자였던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는 유럽 주요 도시 다섯 곳에 다섯 아들을 보낸다. 런던에 간 셋째 아들 나탄이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 시기 포르투갈에 주둔한 영국군에게 자금을 전달하는 일을 맡으면서 로스차일드는 급속도로 성장한다. 왕정복고 기간 중에는 신성동맹 국가들의 정부 자금조달을 맡아 유럽 최대의 투자은행으로 자리를 잡는다.

 19세기 중반 로스차일드는 이미 유럽 최대의 은행이자 부자였다. 1844년 로스차일드 형제들의 자본금이 주 경쟁사였던 베어링에 비해 10배가 될 정도였다. 이 은행의 규모와 영향력, 그리고 그들이 유대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당시 유럽에서는 로스차일드가 국제 외교를 쥐고 흔들고, 그들이 허용하지 않으면 전쟁도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게 된다.

 유대인 금융가에 대한 서구사회의 뿌리 깊은 반감은 한 세대 만에 유럽 최대의 부호로 등장한 이 유대인 가족이 유럽 왕가 및 정치인과 맺은 정경유착과 영향력에 대한 반감에서 시작됐다. 로스차일드에 대한 현 세대 사람들의 관심 역시 상당 부분은 유대인 금융기업에 대한 세간의 음모론적 시각과 연관돼 있다.

 퍼거슨이 이 가문의 서신을 통해 보여주는 실상은 이와 다르다. 로스차일드가 유럽의 왕가에 밀착하고 그들과 정치인들의 개인재산을 불려주며 국채발행 시장을 지배해 성장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지배하던 국제금융이 국제정치를 좌지우지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였다. 그들은 전쟁에 따른 불확실성과 채권 가격의 불확실성을 싫어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전쟁을 막을 영향력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퍼거슨은 로스차일드 은행의 흥망을 이 가문의 폐쇄적인 운영에서 찾는다. 창업주인 마이어 암셀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아들이 아니면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파트너 계약에 못을 박았다. 그리고 이 전통은 그 후 백 년간 지켜졌다. 딸과 사위는 지참금과 상속권을 가질 뿐이었지만 그나마 상속을 통해 자본이 흩어지는 것도 막기 위해 로스차일드가는 족내결혼을 이용했다.

 1824년에서 1877년 사이 로스차일드 가문 후손들의 결혼이 21번 있었는데 그 중 15번이 자기 집안 사람끼리였다. 유럽 왕족들 사이의 족내결혼을 흉내 낸 이 방식은 자본 유출을 막아 로스차일드가가 은행을 가족 내에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로스차일드가는 바로 이 사업방식 때문에 유럽 최대 투자은행의 자리에서 밀려나기 시작한다.

 첫째, 미국의 잠재력을 일찌감치 인식했으면서도 가족 중 아무도 미국으로 이주하겠다는 사람이 나서지 않아 사업 교두보를 확보하지 못했다. 둘째, 유럽 정부들이 19세기 중반부터 주식회사 형태의 은행을 인가하면서 상업은행 업무에서 경쟁력을 잃어갔다. 셋째, 가족만을 파트너로 승진시켰기 때문에 전문 경영진의 육성에 실패하고 그나마 있던 유능한 직원마저 뺏겼다.

 경영이 3대에서 4대로 넘어가면서 로스차일드 가문 안에서 훌륭한 경영진이 나타나지 않았고 그나마 재능 있는 사람들은 은행업에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친족들 간의 유대감이 옅어지면서 가족 파트너십은 투자은행업에서의 경쟁력을 상실하게 돼 순위에서 밀리게 된다. 투자은행업의 핵심이 자본의 규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문적인 능력을 가진 경영진을 어떻게 육성하고 유지하는가에 달려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기념비적 저술이라고 해도 이 책은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어려운 면도 있다. 백 년도 더 지난 금융거래의 세부 사항에 흥미를 느끼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19세기 유럽 정치사와 사람들에 대해 알고 싶다면도전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번역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다. 금융분야 번역은 조금만 오역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가 어렵다. 이 책 역시 조금만 신경을 써도 피할 수 있는 기초적인 오역이 눈에 많이 띈다. 특이하게도 두 사람이 나눠 번역했는데 그 중 1권의 오역이 심하다. 영국에서 ‘stock’이 채권을 의미한다는 것은 문맥상으로도 뻔한 것인데도 시종일관 주식으로 번역했다. 거기에 인용문을 생략하고 넘어가는 탈역까지 있었다. 원제 『The House of Rothchild』.

주진형 J&Company 대표

●주진형= 서울대 경제학과, 미 존스홉킨스대 졸업(석사·박사과정 수료). 세계은행 컨설턴트, 삼성전자·삼성생명, 우리투자증권(전무) 등에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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