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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보통 영웅을 기억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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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상복
워싱턴 특파원

미국은 수퍼 영웅에 열광하는 나라다. 수퍼맨, 배트맨, 캡틴 아메리카,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그린랜턴…. 이들은 특출한 재력이나 힘으로 시민과 지구를 구하는 초인들이다. 그런데 미국이 수퍼 영웅 못지않게 공을 들이는 게 보통 영웅의 발굴이다.

 최근 작품상 등 아카데미 3개 부문을 수상한 영화 ‘아르고’.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이 이란에 억류된 인질을 구하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각종 논란에 휩싸여 있다. 특히 이란 측은 역사 왜곡이라며 대항 영화를 준비 중이란 얘기도 들린다. 이런 시비와 별개로 이 영화가 미국에서 각광받는 건 보통 영웅에 환호하는 사회 분위기와 관련 있다고 본다. 주인공은 철인의 경지에 오른 코만도나 람보급이 아니다. 직업정신에 투철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봄직한 평범한 인물이다. 그런 현실성이 보통 영웅 판타지에 목마른 미국인을 자극했을 거라고 믿는다.

 지난달 28일 시퀘스터(연방예산 자동삭감) 발동을 하루 앞두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 지도부가 만난 곳은 한 동상 제막식이었다. 주인공은 시민운동가 로사 파크스. 평범한 재봉사 출신으로 흑인 차별을 철폐하는 데 앞장섰던 인물이다. 한동안 눈도 안 마주쳤던 대통령과 야당 인사들이 여기서만큼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시민 영웅에 대한 예우 때문이다. 파크스의 동상이 놓인 의사당 스태추어리 홀에 가보니 그야말로 보통 영웅들의 천국이었다. 정치인·농부·군인·과학자·작가·변호사…. 100개에 달하는 동상이 곧 미국의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은 보통 영웅을 발굴하고 기억하는 데 탁월하다. 거리나 도로명에 평범한 사람들의 이름이 들어 있는 걸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비극 속에서도 어떻게든 한 줄기 빛을 찾아내는 게 장기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의회 국정연설에서 허리케인 샌디가 탄생시킨 작은 영웅을 소개했다.

 “맨추 산체스라는 뉴욕시 간호원을 본받아야 합니다. 병원이 암흑으로 변했을 때 그가 생각한 건 자기 집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돌보던 20명의 신생아였습니다. 그는 아이들을 지켜냈습니다.”

 보통 영웅들은 사회를 지키는 힘이다. 미국에선 소방관의 직업만족도가 전체 직업 중 5위 안에 든다. 시민의 재산과 목숨을 지키니 영웅 대접을 받는다.

 우리에게도 보통 영웅이 많다. 천안함 폭침 때 구조 작업을 하다 숨진 고(故) 한주호 준위가 대표적이다. 나라를 지키다 숨진 이름 없는 병사들도 모두 보통 영웅이다. 하지만 우린 이념적 문제로 젊은 영웅들을 외면한 적이 있다. 유엔 제재로 북한의 위협이 한층 높아진 상황에서 더 이상 같은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위기를 이겨내자면 더 많은 보통 영웅이 필요하고, 우린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

이 상 복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