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코박터 특이한 단백질로 '위산 방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사람의 위 속은 살이 탈 정도로 강한 위산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데다 고깃덩어리 등도 소화액이 녹여버린다. 생물의 생존환경으로는 최악이다.

지난해 건강검진 결과를 받아든 사람 10명 중 8명 꼴로 감염된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 위염.위암의 원인균으로 알려지는 등 악명이 높지만 그런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생존 비결은 신비하기까지 하다. 헬리코박터가 위에서 발견된 것은 1970년대 말.

그러나 20여년 뒤인 지난해에야 생체 구조적으로 어떻게 그런 환경에서 살 수 있는지가 밝혀졌을 정도로 많은 과학적 수수께끼를 안고 있었다.

포항공대 오병하 교수는 "헬리코박터는 위산을 방어할 수 있는 특이한 단백질을 만드는 등 다단계 위산 방어시스템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오교수는 지난해 세계에서 처음으로 위산 속에서도 헬리코박터가 사는 비결이 단백질 구조에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구조생물학자.

◇ 동료 희생 덕에 산다=헬리코박터는 동료가 죽어야 살아 남는다. 서로 공격해 죽이는 것이 아니다. 아직 과학적으로 스스로 동료를 위해 죽는 것인지, 아니면 어쩔 수 없어 죽는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죽어야 종족이 보존되는 게 헬리코박터의 세계다.

헬리코박터는 몸 안에 위산을 중화시키는 알칼리성인 암모니아를 만들 수 있는 유리에이즈라는 효소를 가지고 있다. 강한 위산이 엄습할 때는 제빨리 유리에이즈를 뒤집어 써 위산을 약하게 만들어야 살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만든 유리에이즈를 꺼내 몸에 바를 수 없다는 데서 헬리코박터의 불행은 시작된다. 자신이 죽어 몸이 터짐으로써 동료의 몸에 유리에이즈를 뿌려 주거나, 아니면 동료가 그렇게 해 주는 수밖에 없다.

동료 희생을 딛고 살아 남은 헬리코박터는 비상 상황이 해제되면 몇시간 만에 원래 숫자만큼 증식한다. 헬리코박터의 박멸이 어려운 이유다.

◇ 축구공 모양의 단백질 구조가 생존 열쇠=과학자들은 헬리코박터가 사람 몸 속의 요소로 암모니아를 만들어 위산을 중화시키는 방법으로 살 것이라고 지난 20여년 동안 추측할 뿐이었다. 단백질의 일종인 유리에이즈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단서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유리에이즈가 약산성인 pH5에서도 제기능을 전혀 못했기 때문에 그보다 1백배나 농도가 높은 pH3의 위산에서 견뎌 암모니아를 만들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오영환 교수가 밝힌 유리에이즈의 특이한 구조는 이런 수수께끼를 시원하게 풀어줬다. 그 구조는 축구공 표면의 색이 다른 각 조각처럼 유리에이즈 12개가 서로 붙어 공처럼 뭉쳐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각각의 유리에이즈가 위산에 노출되는 부분을 최소화한다. 이들 단백질도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셈이다.

오교수는 "유리에이즈는 요소로 암모니아를 만드는 부분은 바깥쪽,위산의 공격에 대항할 수 없는 부분은 공의 안쪽으로 넣는 술수를 발휘한다"고 말한다. 이 공 안에 세포액을 품고 있으면 이중 삼중의 방어벽을 만드는 셈이라는 것이다.

동료의 시신에서 나온 유리에이즈를 뒤집어 쓰거나,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유리에이즈의 뭉치 속에 세포액을 품건 간에 헬리코박터의 생존 열쇠는 위산에 견디는 구조를 가진 유리에이즈가 결정적이다.

박방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