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로지] 연극과 함께 30년 윤석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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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없던 현상 중 하나가 교회에도 (일부이긴 하지만) PD와 카메라맨이 근무(?) 한다는 사실이다.

신도의 수가 넘쳐나서 본당 이외의 곳(별관.지하 등) 에는 영상으로 설교를 중계하는 대형 교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아무래도 목회자를 직접 마주하면서 '라이브'로 보는 예배에서 더 감동.감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슬쩍 든다.

오랜 친구 사이라서 오히려 새삼스러울 수 있는 질문, 그러나 근본적인 질문 몇개를 윤석화에게 던진다. 왜 연극을 하느냐□ 주저함 없이 (그녀의 특징이다) 대답한다. "순간의 정직함 때문이다." 그녀를 30년 가까이 무대에 버티게 한 힘의 원천은 바로 그 연극을 하는 순간마다의 정직함인 것이다.

그녀와 대화하다 보면 소크라테스가 질문과 대답을 영혼의 산파술이라고 규정한 말의 속내를 어렴풋이 짐작할 만하다. 거침없는 말에는 혼의 울림이 깃들여 있다. 거기에는 또 아주 오랫동안 그 문제에 대해 고뇌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와 진실이 묻어난다. 결코 남이 써준 대로 연습하거나 기계적 훈련에 의해 나올 수 있는 대답이 아니다.

때로 이런 생각이 든다. "그녀는 미쳤다." 그러지 않고는 도저히 저렇게 무대에서 할 수 없다는 판단에 이르기 때문이다. 의사도 아닌 나는 감히 그녀를 환자로 규정한 적이 있다. 무대 밖의 그녀는 다분히 조울증이다. 어떤 땐 소녀처럼 펄쩍펄쩍 뛰며 좋아하다가 어느 땐 자살하기 30분 전의 여자가 된다.

그녀에게 "연극하지 마"라고 하는 건 "너 당장 죽어"하는 말과 동의어일 것이다. 그녀는 확실히 연극적이다. 어떤 사람은 이를 부담으로 여긴다. 하지만 연극이 허구를 통해 진실에 이르는 고독한 과정이고 또 그것이 배우가 허위의 삶에 내몰린 관객과 매번 '따뜻한 진실'을 나누어 갖는 작업임을 감안한다면 그녀의 순정을 의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연극은 그녀가 관객에게 전하는 땀에 젖은 선물이다.

'무작정 연극이 좋아서'라며 무대에 섰던 많은 배우 지망생들이 '가난이 무서워' TV로 이사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어느 장르가 더 의미있느냐고 묻는 건 어리석거나 잔인하다. 길 위의 풍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게 더 예술에 가까우냐고 묻는다면 아무래도 매번 온몸을 던지며 기계가 아닌 인간의 육성으로 관객에게 다가가야만 하는 연극이라고 답하고 싶다.

그녀의 담백한 꿈은 '가장 좋은 나'로 살고 싶은 것이다.

어영부영 사는 건 스스로 용납 못한다. 그래서 프로다. 그녀는 연극배우의 목구멍이 포도청에 비유되지 않도록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몇 안되는 배우, 그래서 입장료가 아깝지 않은 배우다. 그녀는 자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한다. 적어도 몇분에 한번씩은 꼭 그 말이 나온다.

왜 그녀에게 그런 이상한 언어 습관이 생겼을까. 돌아보니 그녀는 무대 안팎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다. 이제 그녀의 테마는 그 대상이 삶이건 연극이건 한결같이 '두려움 없는 사랑'이다.

자, 심각한 질문 하나. 연극이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의 입에선 역시 머뭇거림의 흔적도 없이 답이 나온다. 연극은 연극다워야 한다는 거다. 연극다운 연극이란□ 차마 그 질문까지는 못했다. 그 해답을 구하기 위해 그녀는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무대에 서리라는 걸 친구인 내가 헤아린 까닭이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chjoo@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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