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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점마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주여, 가을입니다. 「릴케」는 이 구절로 그의 보석같은 시「추일」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얘기는 그런 가을을 노래하는 현란한 것이 못되고 다분히 떫덜한 몇 해전 어느봄 날의 회상인 것이다.
학교 근처 다방에서 약속한 친구를 기다리는 무료한 차를 마시는 참에 문득 옆자리의 회화가 귓전에 들어온다.
얘기를 하는 주인공-그 학생은 무척 흥분하고 있어서 공개연설같은 얘기를 안들을 수도 없었던 것이다.
주인공은 가정교사라는 흔한 「아르바이트」로 학구생활을 해가는 어려운 처지에 있었다. 그래 이번에는 장학금을 타려고 애써봤는데 한과목의 점수가 미달이라 자격을 상실했다는 얘기다.
애석한 일이다. 그런데「스피치」는 다음이 있었다. 도대체 그 점수 미달의 과목이라는 것이 대수롭지 않은 과목이요, 담당선생 또한 출석이나 따지는 시시한 위인으로 되어있는 것이다. 무척 속이 상한 거로군, 생각하고 있는데「스피치」는 그 다음이 있고 또 그것은 경청하고 있는 나로하여금 몹시 당황하게 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 학점을 얻을겸 최소한도로 그렇게 나쁘게 나올리 없는 자기점수를 따질겸 한보따리 들고 갔는데 제기랄, 종시 벽창호였었다는 것.
귀를 닫자 분명히 지금은 가을.
그들은 이미 이 가을하늘하래 어느 직장에서 사회인으로 또 긍지 높은 시민으로 생활을 영위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낙하하고 있는」이 가을에 잠시 떫덜한 어느 봄의「스냅」을 내가 회상하듯이 그도 그럴는지 모른다.
오늘도 나는 분필을 드는 생할을 계속하였다. 나의 후배요, 그의 후배들의 수강신청을 받고 시험을 치르게 하고 낙제점도 줘야하고, 이렇게 R{속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가을이 흐르듯이 교육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곽복록<서강대교수·독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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