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무상보육 중단 ‘도미노’사태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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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서울시가 무상보육 중단 ‘도미노’ 사태가 빚어질까 떨고 있다. 서초구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양육수당 지급을 곧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통보한 데 이어 구로·동대문 등 다른 자치구도 부족한 예산 탓에 수당 지급을 계속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서초구는 최근 “무상보육 관련 예산이 부족해 이르면 5월부터 영·유아 양육수당을 지급할 수 없다”는 공문을 국무총리실과 기획재정부·보건복지부·서울시 등에 보냈다. 서초구 관계자는 “현재 재정 상태로는 5월 이전에 양육수당 예산이 소진된다”며 “국고보조금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서초구는 올해 무상보육 예산으로 222억원을 책정했지만 81억원이 부족한 상태다.

 다른 자치구도 사정이 비슷하다. 본지가 보육예산 고갈 시기를 확인한 결과 25개 자치구 중 20개가 10월에 예산이 바닥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보육예산이 집행되는 시기가 3월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대부분의 자치구가 시행 반 년이면 예산을 다 쓸 것으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서울시 각 자치구가 무상보육 관련 예산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올해부터 무상보육 대상을 0~5세 영·유아 전체로 확대했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는 소득하위 15% 가정의 0~2세, 소득하위 70% 가정의 3~4세 자녀 등 제한적으로 제공했다. 한 자치구 관계자는 “양육수당 수혜자가 얼마나 될지 정확한 집계가 없으니 당연히 준비 예산도 없다”며 “양육수당은 당장 4월부터 지급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무상보육 대상자가 크게 늘었지만 특히 서울이 가장 문제다. 서울은 무상보육 확대의 새로운 수혜자가 된 소득 상위 30% 가구 비율이 42%에 달해 다른 시·도(평균 23.4%)보다 예산 확보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또 시와 자치구가 공동으로 부담하는 보육 예산 부담 비율이 80%로 다른 지자체에 비해 높다.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광역 시·도의 분담비율은 대부분 50% 이하다.

 대전시의 한 관계자는 “보육 예산이 더 필요하기는 하지만 국가와 지자체 분담 비율이 6대 4라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정난을 겪고 있는 일부 지자체는 이 정도 분담 비율도 부담스러워한다. 경남도 관계자는 “올해 확보한 보육예산은 447억원이지만 545억원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며 “국비 분담비율을 50%에서 70%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도 “국비 분담비를 현행 20%에서 50%까지 확대하지 않는 이상 예산 부족 문제를 해결할 대안이 없다”고 주장한다. 조현옥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장은 “지난해 0∼2세 영아에 대한 전 계층 무상보육이 실시되면서 시와 구는 총 1751억원에 달하는 예산이 부족해 고통을 겪어야 했다”며 “국고보조금이 50%까지 확대되지 않으면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심각한 수준의 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유아 보육비의 국고보조율을 현행 20%에서 40%(지방은 50%에서 70%)로 높이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지난해 11월부터 4개월째 국회 계류 중이다. 한 자치구 관계자는 “이 안이 통과되면 숨통이 트이겠지만 만약 무산되면 우리도 서초구처럼 곧 지급 중단을 선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성운·조한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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