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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헌재 언제까지 뒷방 취급할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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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헌법재판소장 공석 사태가 40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대법원장과 국회의장, 국무총리와 함께 4부(府) 요인으로 불리는 중요한 자리가 마냥 비어 있는 것이다. 이런 위헌적 상태가 대체 언제까지 계속돼야 할지 답답한 노릇이다.

 이번 공석 사태는 이강국 전 소장이 지난 1월 21일 임기(6년) 만료로 퇴임한 뒤 이동흡 소장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단계에서 사퇴한 데 따른 것이다. 현재 선임인 송두환 헌법재판관이 소장 대행을 맡고 있다. 하지만 송 재판관 역시 오는 22일이면 임기 만료로 물러난다는 점에서 1988년 헌재 출범 후 처음으로 ‘7인 재판관 체제’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같은 사정을 빤히 알고 있을 청와대에서도 후임 소장 인선을 논의한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고 있다. 정부조직법 개정과 장관 인사청문회 등 눈앞에 산적한 현안들 때문인 듯한데 인선 지연 이유에 관해 한마디 언급도 없다. 헌재가 얼굴 역할을 하는 소장 없이 표류하는 국면에서 언제 벗어날 수 있을지 기약하기 힘든 실정이다.

 헌재는 지난 25년간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악법들을 일소해 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대통령 탄핵이나 행정수도 이전과 같은 대형 정치 사건에서 국정이 나아갈 방향을 정해 왔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헌재의 기능이 무력화된다는 것은 헌정 시스템 전체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위헌결정에 재판관 6명 이상의 찬성을 요구하는 헌법 아래에서 7인 재판관 체제는 사실상 아무것도 하기 어렵다. 이강국 전 소장이 지난해 2월 당시 조용환 후보자 논란에 따른 재판관 1명의 공석 사태에 대해 국회의장 앞으로 보낸 공식서한에서 “위헌적 상태가 장기화되고 있다”고 지적한 것도 그 때문이다.

 법과 원칙을 지키겠다고 다짐해 온 박근혜 정부가 헌법재판 기관을 뒷방 취급해서는 안 된다. 정치 현안 처리와 헌재 소장·재판관 인선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위헌 법률에 고통받으며 헌재를 바라보고 있을 시민들을 직시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