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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려잡자 지하경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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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종윤
뉴미디어 에디터

호락호락했으면 지하경제가 아니다. 지하경제는 음험한 계략에 맞춰 일부러 어두운 땅 밑으로 숨어 들어간 존재가 아니다. 인간의 본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예컨대 성매매 문제를 보자. 자발적인 성매매를 금지하자는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은 거래 당사자가 아닌 제3자다. 이들은 돈으로 성을 사고파는 거래에 대한 도덕적 문제를 제기한다. 거래 당사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자유 의지에 따른 경제활동이다. (물론 감금당해 성매매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글에서는 자발적인 성매매만 논의의 대상에 넣는다.)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미국 로욜라 대학의 월터 블록 교수는 성매매를 우유와 파이를 사고 파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디펜딩 더 언디펜더블(Defending the Undefendable)』) 우유와 파이를 거래할 때는 제3자가 관여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성매매에 대해서는 제3자가 영향력을 행사하려 든다. 이건 부질없는 짓이다. 법으로 성매매를 금지하면 당사자들은 더 지하로 숨고 거래 내용을 감춘다. 지하경제가 뿌리를 튼튼히 내리는 공식이다.

 암표 거래도 마찬가지다. 암표가 존재하는 건 공급보다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암표상은 꼭 그 공연을 보고 싶어하는 고객을 만족시킨다. 표를 살 시간이 없거나, 긴 줄 서서 고생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더 많은 비용을 들여서라도 암표상을 찾는다. 파는 쪽과 사는 쪽이 모두 이익을 보는 구조이니 암표상이 없어질 리 없다.

 단적인 사례지만 지하경제는 이처럼 커튼 뒤의 필요악처럼 좋든 싫든 경제 생태계의 한 축을 맡는다. 박근혜 정부는 이런 지하경제를 세심하게 다뤄야 한다. 지하경제를 양성화하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게 조세 정의다. 그런데 방식이 거칠다. 벌써 ‘때려잡자 지하경제’라는 식의 구호가 요란하다. 전쟁은 하되 약자들을 우선 피신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약자가 영세 자영업자들이다. 이들이 요즘 가장 노심초사(勞心焦思)하고 있다. 하루하루 힘들게 사는 이들이 평소 세금을 생각했을 리 없다. 시장 노점상이, 분식집 아줌마가 말한다. “지하경제 뿌리뽑는다는데 우린 더 숨어야 합니까?”

 정의를 실현하려는 법 집행에도 배려는 필요하다. 원칙에 충실해야 하지만 종종 넉넉한 인심을 발휘하는 게 정의다. 포장마차에 들이닥쳐 손때 묻은 장부 보자고 하는 건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그럴 일 없다”고 해도 ‘지하경제 척결’이라는 기세에 영세 상인들은 지레 겁먹게 돼 있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체계적인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분명한 방향과 스케줄이 있어야 불필요한 오해를 막을 수 있다. 어둠을 노리는 칼끝은 날카롭되 정확해야 위협적이다. 먼저, 헤드라이트를 비춰야 할 곳은 의사·변호사 등 고소득 자영업자와 대기업들의 땅 밑이란 건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김 종 윤 뉴미디어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