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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형이라는 이름의 불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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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강갑생
JTBC 사회 1부장

얼마 전 한 경찰 간부와 나눈 대화다.

 “퀵서비스나 택배 오토바이들의 불법 행위는 왜 단속이 안 되는 거죠?”

 “단속도 어렵고… 게다가 단속하면 하루 일당 다 날아간다고 하소연하니까.”

 “그래서 단속을 꺼린다는 건가요?”

 “경찰도 사람이다 보니….”

 이 간부가 한 말의 요점은 ‘생계형’이다. 먹고살려고 힘든 일 하는 사람들을 단속하자니 맘에 걸린다는 거다. 수긍 못할 얘기는 아니다.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걸리면 3만~4만원의 범칙금을 내야 한다. 거의 하루 일당이다.

 돌아보면 며칠 전 막을 내린 MB정부 때 유난히 ‘생계형’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 것 같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민 보호를 많이 강조하다 보니 정부 부처도 알아서 보호책을 내놓았다. 행정안전부는 2008년 ‘생계형’ 노점이나 ‘생계형’ 주·정차 위반 등에 대해선 처벌 대신 계도 위주로 단속하겠다는 방안을 밝혔다. 법무부도 서민 생계형 범죄는 관대하게 처벌하겠다고 발표했다. 어려운 사람 조금 봐주자는 취지다 보니 딱히 반대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퀵서비스나 택배 오토바이만 해도 그렇다. 도로 위에서 차선을 멋대로 바꾸고 곡예운전을 하는 탓에 교통사고가 적지 않게 생긴다. 2011년 교통사고 사망자 5200명 가운데 720명이 오토바이 운전자였다. 도로가 막히면 인도로도 거리낌없이 뛰어든다. 보행자들로서는 상당한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서울 노량진 고시촌 주변의 ‘컵밥’ 노점 철거 문제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용자 입장에선 컵밥이 싸고 간편해서 좋다. 그러나 컵밥 노점상 대부분은 세금을 내지 않는다. 반면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장사하는 주변 식당들은 컵밥 노점 때문에 큰 타격을 입었다. 그래도 생계형 노점을 부수는 건 심했다는 비판은 가능하다. 하지만 노점이 세금도 내지 않고 허가도 받지 않은 점은 분명하다. 또 생계형 노점 기준도 애매하다.

 점심시간 때 서울 시내 영세 식당 주변 도로에 주차를 임시로 허용하는 서울시 정책도 마찬가지다. 영세 식당을 돕겠다는 취지이지만 도로변 주차는 엄연히 불법이다. 주차 차량들 때문에 도로 소통이 지장받는 경우도 잦다. 게다가 영세 식당도 아닌 하루에만 수백만원씩 매출을 올리는 식당들까지도 덩달아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이건 공평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생계형이라는 단어 아래 이뤄지고, 묵인되는 불법은 이젠 그만 끝내야 한다. 그들의 생계가 걱정이라면 사회 보장망을 확대해 지원하는 게 낫다. 또 법이 너무 가혹하다면 차제에 법 정비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대신 이 과정을 거쳐서도 여전히 불법으로 명시된 행위는 엄히 단속해야 한다. 생계형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의 안전을 위협하고 불편을 끼칠 권리는 누구에게도 허용될 수 없다. 지원과 불법 단속은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그게 국민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강 갑 생 JTBC 사회 1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