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 인플레, 서울대 가장 심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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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학기 꿀강이라서 신청했어요. 기본이 B+ 이상이래서요.”

 서울대에 다니는 정모(21)씨는 이번 학기 만족스러운 ‘꿀강’(학점 잘 주는 강의) 시간표를 짰다. 그가 내민 시간표에는 어렵게 수강 신청했다는 꿀강이 여러 개 있었다. 서울대에서 A학점을 많이 주기로 입소문이 난 수업들이다. 정씨는 교양 과목 중 ‘불교철학’과 ‘고급영어’를 찍어 보였다.

 서울대 학칙상 상대 평가에 따라 A학점은 수강 정원의 30%, B학점은 40%까지 줄 수 있다. 하지만 정확히 지켜지는 경우는 드물다. 외교학과 전모(21)씨가 지난해 들은 ‘인간의 이해’라는 심리학과 1학년 전공 수업에선 수강한 150여 명 중 38%가 A학점을 받았다. 심지어 20명 이하 소규모 영어 강의에선 50%까지도 A학점이 나왔다고 한다. 전씨는 “계열에서 전공 선택을 하는데 인기 학과는 커트라인이 학점 4.3 만점에 3.7이 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사회과학대학이 내부에 공개한 계열 신입생 평균 학점에서 3.8 이상인 고학점자는 40%에 육박했다. 경제학과 임모(22)씨는 “최근 로스쿨 진학 희망자까지 늘어 원래 있던 학점 경쟁이 극심해진 탓”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대의 학점 인플레이션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학생뿐만이 아니다. 26일 졸업식을 한 서울대 학부 졸업생 2565명 중 단과대별로 최우등 졸업생은 303명(12%)이었다. 우등 졸업생은 741명(29%)에 달했다. 우등 졸업 이상이 41%였다. 서울 시내 대학 중 최고다. 올해 연세대는 졸업생 중 31명이 최우등, 68명이 우등 졸업했다. 전체 졸업생(총 4112명) 가운데 각각 1%, 2%에 불과했다. 고려대는 최우등과 우등 졸업생 비율이 각각 5%와 3%, 이화여대는 각각 3%, 11%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A·B 전체 학점 부여비율을 70%로 제한했어도 A학점의 상한선은 아직도 교수 재량이다. 서울대 교무처 관계자는 “단과대별로 학점을 처리해 일일이 제한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이지은·이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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