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3사 연기대상, 권위 및 신뢰도 상실

중앙일보

입력

지상파 방송 3사의 연말 행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히는 '연기대상'이 지나치게 많은 연기자들에게 상을 남발함으로써 권위와 신뢰도를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구랍 31일 밤 개최된 '2001 SBS 연기대상'은 이례적으로'여인천하'의 두 주인공인 전인화와 강수연에게 연기대상을 시상하는 결정을 내렸다.

SBS측은 PD설문조사, 네티즌 투표, CP 및 본부장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 회의를거친 결과, 두 사람이 높은 점수를 얻어 공동시상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히고 있지만 시청자들은 SBS가 연기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엄정하게 연기력의 우열을 가리지 못한것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SBS는 또한 신인상 수상자를 따로 선정하지 않고 신인상 후보에 오를만한 연기자 8명에게 모두 '뉴스타상'이라는 새로운 상을 안겼으며, 연기상도 단막극, 드라마스페셜, 연속극, 시트콤 부분으로 나누어 시상하고, 10대스타상, SBSi상 등의 명목으로 12명의 연기자에게 다시 상을 주는 등 지난해 웬만큼 눈에 띄었던 연기자 모두에게 수상의 영예를 안겨주는 '배려'를 보였다.

KBS와 MBC 또한 별로 다르지 않았다.

KBS는 구랍 31일밤 개최된 '2001 KBS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남,녀 우수연기상,조연상, 작가상, 남, 녀 신인상 등 대부분의 시상 부문에서 2명의 연기자에게 상을안겨주는 아량을 베풀었으며, 여자 인기상 부문에서는 이요원, 이승연, 한고은 등 3명의 연기자에게 상을 주기도 했다.

MBC는 대상 다음으로 가장 깊은 의미를 지닌 최우수 남자연기상, 최우수 여자연기상 수상자를 각각 2명으로 결정했으며, 남, 녀 신인상, 우수 남자연기상 등에서 공동수상자를 배출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시청자들은 지상파 방송 3사의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연기대상의 공정성과 신뢰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글을 속속 올리고 있다. 방송사들이 연예인들의 눈치를 보면서, 스스로 상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이들의 주장이다.

각 방송사의 실무진들도 이같은 시청자들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MBC 심의부의 한 관계자는 "지상파 방송사의 연기대상이 연기자들에게 상을 남발하고 있다는 지적은 옳다"며 "치밀하게 연기력의 우열을 평가해야할 연기대상 시상식이 연예인들과 친해지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SBS 드라마국의 한 관계자는 "갈수록 연예기획사들의 힘이 세지는 상황에서 지상파 방송사가 연기자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주요 드라마에서고생한 연기자들에게 아무런 상도 주지 않는다면 앞으로 캐스팅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에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에게 상을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연기대상 행사를 성대하게 치르려는 방송사의 욕심과 자신이 수상하지 않는다면행사에 참가하지 않으려는 연기자들의 이기심도 상이 남발되는 주요한 요인이 되고있다.

'2001 KBS 연기대상'을 준비했던 KBS 드라마국의 한 관계자는 "올해에는 KBS와SBS가 같은 날 연기대상 행사를 진행하면서 연기자 섭외에 골머리를 앓았다"며 "연기자들은 자신이 상을 받지 않는다면 굳이 행사에 참석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공공연히 하고 다닌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연기대상의 방송 3사 합동개최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지상파 방송 3사가 합동으로 공정하게 연기력을 평가하는 기준을 만들고, 시청자의 의견에 귀기울여 시상식을 치러야한다는 것. 이는 곧 미국의 에미상처럼 방송프로그램 및 연기자에 대한 권위있는 경쟁의 장으로 발전될 수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한국방송대상, PD연합회상, 백상예술대상 등에서 연기자에 대한 시상을 거행하고 있지만 방송 3사의 연기대상만큼 대중의 관심을 모으고 있지 못하다.

장기랑 PD연합회장은 "각 방송사의 사적인 이익에서 벗어나 대승적인 입장에서진정한 연기자를 평가하는 자리가 있어야한다는 지적에 공감한다"며 "각 방송사의 PD들이 연기대상 통합에 대한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인다면 PD연합회가 구심점의 역할을 해보겠다"고 말했다.(서울=연합) 최승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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