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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이종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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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마을처녀 한자리 목청껏 강강술래>
강강술래
하늘에는 별이 총총, 강강술래
동산에 달 떠오른다, 강강술래
동무좋고 마당도 좋네, 강강술래
마을 처녀들이 한데 모여 진양조의 느린 가락으로 목청껏 화답하는 가절. 그 중에도 가장 좋은 날이 음력 팔월 보름 한가위다. 덥도 춥도 않은 날씨에 달밝고 속 시원하여 「추석」이라 한다. 1년 농사도 거의 끝나 오곡백과가 풍요한 이때는 잠시의 망중한. 역시 농본국인 우리나라는 이 날 조상에게 풍임을 기원하고 혹은 추수를 감사드려 다례와 성묘를 한다. 한가위는 이래서 허다한 명일 중 뜻깊고 흥겹기 대표적인 명일이다.
저기저기 저 달 속에, 강강술래
초간 삼간 집을 짓고, 강강술래
양친부모 모셔다가, 강강술래
천년만년 살고지고, 강강술래
한가위 무렵이면 사람들은 부모를 생각하고 고향을 그린다. 현대 문명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고향을 떠나게 하고 있지만 한가위마저 잊게 하진 않았다 서울역이 붐비기는 이때가 제일. 비록 휴전선너머에 가족을 둔 실향인일지라도 마음만은 고향에 간다.

<집마다 돌아다녀 덕담으로 떡과 술>
1년에 하루 한때만이라도 온 집안이 자리를 같이하고자하는 날이요, 또 온 마을이 함께 즐기고자 하는 날이다. 어느 마을이고 농가를 울리지 않는데가 없다. 뿐더러 기호지방에선 「거북놀이」「사자놀이」를 곁들여 흥을 돋운다. 젊은이들은 맥방석과 수수깡으로 거북탈을 만들어 앞세우고 『천석 거북아 놀아라, 만석 거북아 놀아라』가가호호를 순방하여 덕담 값으로 떡과 술을 추렴한다.
닭 가는데 꼬꼬 소리, 강강술래
말 가는데 원앙소리, 강강술래
우리 벗님 어디가고, 강강술래
중추 명절 모르는고, 강강술래
일찍이 신라서도 한가위 때면 나라에서 큰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특히 여성들에 있어서는 길쌈내기의 종합성적을 내는 최종일이 되어 가무백희를 베푸니 이것이 「가배」즉 「가위놀이」의 시초. 이 때 진 편의 여자가 일어나 춤을 추며 탄식하기를 『회소…』라하여 그 음조가 슬프고 아름다웠다. 뒤에 이 소리로 인하여 노래를 지어 이름을 회소곡이라 하였다고 삼국사기(신라 유리왕 조)에 기록돼있다. 회소곡은 나중에 신라의 유명한 노래가 됐다 하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길쌈내기 습속이 오늘날까지 내려와, 농촌의 부녀자가 공동으로 길쌈하는 것으로 「두레삼」(공동 마궤) 이라 일컫는다. 두레삼은 으례 가을밤의 일. 이런 때 송편이며 호박떡·밤단자와 대추·감·배 등 햇과일이 따라나오게 마련이므로 이르기를 「달떡잔치」. 8월 15일은 또 신라 사람들의 전승 경축일이었다고도 한다. 신라가 발해와 싸워 이 날 크게 이김으로써 거국적으로 갖가지 행사를 베푸는 기념일이 됐다고도 전하다.

<가슴맺힌 사연들 떼지어 풀어보고>
남자짜리 각시들은 시집살이 근심하고, 강강술래
우리같은 처녀들은 길쌈하기 근심하네, 강강술래
강강술래는 인원의 제한을 받지 않고 공동으로 즐기는데 더없이 흥겹고 단란한 유희임에도 그 음조는 애련하고 아름답다. 옛 회소곡의 여음이 남아 흘러든 것일까. 긴 세월 동안 여성의 역사에는 슬픔이 도사렸고 그 가운데서 아름답게 정화한 향토색- 이것이 바로 강강술래의 가락인지 모른다. 규중의 여성들은 이 날 처음 마음껏 뛰놀고 즐긴다. 수 10명씩 무리지어 손과 손을 맞잡고 극히 단조한 원무를 되풀이하는데 그 가조는 저들의 가슴속에 맺힌 희노애락의 사연들. 조용한 동구밖의 너른 마당이나 모래펄에 모여 달님에게 호소하듯「강강술래」.

<처음엔 느린 가락 제풀에 열을 올려>
처음엔 느린 가락으로 한 발짝씩 떼놓다가 제풀에 열을 올라간다. 그들의 격정은 메기고(광창) 받는(후창) 소리가 재재발라 질수록 높아진다. 원진은 휘감는 듯 풀리고, 풀리는 듯 휘감기며 다시 조용해지고 또 서서히 높아지고.

<윤무속도 빠르면 영차소리로 난무>
강강술래는 윤무의 속도가 너무 빨라 대열을 지탱할 수 없을 때 그 절정에 달한다. 「강강…」대신에 「영차 영차」소리를 지르며 제각기 원 안에 들어와 난무하는 모습은 보기 드문 장관이다. 지방에 따라서는 3명을 한 짝으로 하여 줄을 짓기도 한다. 어깨동무한 위에 다른 한 사람을 올려 세우고 율동하는 것이다.
우라버님 노리개는 간지수지 노리갤네, 강강술래
우러머님 노리개는 물제꼭지 노리갤네, 강강술래
우리오빠 노리개는 살부자리 노리갤네, 강강술래
우리동생 노리개는 곶감대추 노리갤네, 강강술래
3배 50년전 임진난때. 이충무공은 왜군에게 해안을 경비하는 군세의 많음을 보이기 위해 부녀자들로 하여금 언덕에 올라가 불을 놓아 돌면서 「강강술래」를 부르게 했다고 한다.

<전라도 민속놀이 임진왜란땐 병법>
또는 이 충무공이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심을 통일하는 수밖에 없다하여 짐짓 노래를 지어 젊은 여성들에게 부르게 했다고도 한다. 그것이 점점 호남일대에 퍼져 특유의 민속놀이가 됐는지도 모르나 이 놀이의 본고장은 전남 진도와 우수영 지방. 「강강술래」란 말로 「강강순라」 즉 주위의 강적을 경계하라는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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