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세상읽기

중국이 북핵에 결단을 내려야 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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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박근혜 정부가 출범했다. 다음달 초엔 중국에 시진핑(習近平) 시대가 열린다. 두 나라 모두 민생(民生) 개선이 현안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건 안정된 외부 환경이다.

 하나 민생을 개선할 능력도, 또 의지도 없는 북한이 잇따른 핵 협박으로 이 같은 한·중의 바람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북핵(北核)을 막지 못한 지난 20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북한의 최대 후견국 중국에 대한 실망과 비난도 많이 나온다. 중국에 속았다는 말도 있고, 더 이상 중국을 믿지 말자는 주장도 들린다. 그러나 감정이 앞선 ‘중국 무용론(無用論)’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핵을 막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계속돼야 하며, 그 노력에 중국이 빠진다면 아무런 결실도 기대할 수 없다.

 현재 필요한 건 중국을 설득해 우리와 보조를 맞추도록 하는 일이다. 중국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현실적 사고를 하는 중국엔 보다 현실적 이해 문제를 갖고 접근해야 한다. 중국이 말하는 중국의 ‘핵심이익(核心利益)’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진핑은 지난달 28일 중국 수뇌부가 참여하는 정치국 집단학습을 열었다. 주제는 ‘평화발전의 길을 걷자’. 중화권 언론은 시진핑 시대의 외교 노선이 드러났다고 평했다. 시진핑은 이 자리에서 중국의 핵심이익을 확고하게 지켜 나가겠다고 천명했다.

 중국의 핵심이익이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9년 11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방중 시 미·중 공동성명에 실리면서다. 이 같은 중국의 핵심이익 운운이 관심을 끄는 건 이것이 침해를 받을 경우 중국이 무력 동원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중국의 핵심이익인가. 외교담당 국무위원인 다이빙궈(戴秉國)가 2010년 말에 구체적으로 밝힌 바 있다.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중국의 국가체제, 정치체제 및 정치적 안정으로 여기엔 공산당 영도, 사회주의 제도,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노선이 포함된다. 둘째는 주권보호와 영토보전, 국가통일이다. 셋째는 중국 경제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기본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첫 번째 핵심이익은 공산당 일당 독재에 의한 사회 안정이다. 따라서 다당제를 외치거나 서구식 민주화를 주장하는 재스민(茉莉花) 운동은 단속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핵심이익 중 주권보호 및 영토보전엔 남중국해나 센카쿠 열도(중국명 釣魚島)의 영유권 문제, 또 티베트와 신장 등 소수민족 지역의 분리독립 움직임 문제 등이 포함된다. 대만 문제는 국가통일과 연계된 핵심이익이다.

 북한 핵 개발은 바로 세 번째 핵심이익인 중국 경제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기본적으로 보장하는 것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중국은 2002년부터 20년간을 ‘전략적 기회의 시기(戰略機遇期)’라고 말한다.

 발전에만 매진할 경우 빠르면 시진핑 시기에 국내총생산액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설 수 있다. 1840년 아편전쟁 이래 끝 모를 추락을 거듭했던 중국이 마침내 180여 년 만에 세계 넘버 원의 자리를 탈환하는 것이다. 시진핑이 외치는 중국의 꿈인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 적어도 양적으로는 실현된다. 이 같은 중국의 꿈 달성을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이뤄져야 하고, 이를 위해 외부 환경은 절대적으로 안정돼야 한다. 중국이 이제까지 웬만한 북한의 불장난을 참아 왔던 이유다.

 그러나 북한의 3차 핵실험, 그리고 이젠 핵을 실전배치 단계로 이어가려는 북한의 움직임은 중국이 그토록 지키려 했던 안정된 외부 환경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핵을 머리 위에 얹고 살아야 하는 한국이 안전을 위해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MD) 체제에 가입하겠다고 한다면 중국이 이를 무슨 말로 만류할 수 있나. 또 한국과 일본, 대만으로 이어지는 핵 도미노 현상이 꼭 불가(不可)하다고만 할 수 있는 것인가.

 중국엔 악몽과도 같은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적 행동으로 옮겨지기는 힘들다고 중국은 판단할 것이다. 당연히 쉽지 않다. 그러나 중국이 꼭 그렇게 안이하게 생각할 일만도 아니다. 핵 위협을 직접적으로 받게 된 당사자로선 어떻게든 자구책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비이성적인 북한의 핵에 맞서야 하는 한국 및 주변국들의 자구책은 그것이 어떤 것이 됐든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에 긴장을 고조시키면 시켰지 완화시킬 내용은 아니다.

 이 경우 중국이 마음 놓고 ‘발전’에만 매진할 수 있을까. 중국이 사활(死活)을 걸고 지키려 하는 중국의 세 번째 핵심이익이 심대한 침범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제 중국은 과감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과거 북핵의 위협이 현실화되지 않았기에 소극적 조치를 취해 왔다면 현실적인 위협으로 다가선 지금은 결단을 필요로 한다.

 중국의 꿈을 달성하겠다는 시간표를 멀리 뒤로 밀어놓든지, 아니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단호한 행동에 나설 것인지 중국의 선택만이 남았을 뿐이다.

 사실 중국의 꿈은 경제력 같은 하드 파워에서만의 성장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세계의 문명을 이끌 소프트 파워의 증진을 함께 뜻한다. 그런 중국이 북한의 핵 인질이 돼서는 안 된다. 중국은 북핵 해결의 중심 역할을 통해 국제 사회의 존경을 받는 리더가 돼야 한다.

유 상 철 중국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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