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중앙일보 새해특집] 고개드는 한국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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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2년에서 2년반이 중요합니다.우리 경제의 앞날을 결정하는 시기입니다."

진념 경제부총리는 수출이 사상 최악의 감소율을 기록한 이듬해로, 각종 선거가 몰려 있고 나라밖 여건도 만만찮은 올해 경제를 이렇게 보며 정부의 경제운용계획을 짰다.

정부는 올해 큰 일을 새로 벌이지 않는 대신 기업.금융 구조조정 등 지난해 마무리하지 못한 부분을 매듭짓는 데 역점을 둘 방침이다. 하지만 나라 안팎으로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복병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 4%대 성장 가능할 듯=정부는 올해 성장률을 '4% 이상'으로 잡았다. 재정의 65% 이상을 상반기에 집중적으로 배정해 하반기 경제 회복을 이끌 방침이다. 소비자

물가를 3% 안팎에서 안정시키고, 경상수지는 지난해보다 적지만 40억~50억달러 흑자를 기대하고 있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올해 성장률을 4.1%로 잡았다. 삼성.LG 등 민간 경제연구소들도 3%대 후반으로 보았던 경제 전망을 약간 높일 움직임이다.

경제 전문가들은 돌발 변수가 없는 한 올 성장률이 4% 내외가 되리라는 데 이견이 없다. 다만 체감경기는 하반기가 돼야 좋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KDI 조동철 거시경제팀장은 "세계 경제가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국제유가가 배럴당 20달러 내외를 유지한다면 4%대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문건 전무는 "올해 성장률이 잠재성장률(5%내외)에는 못미치지만 지난해보다 나아질 것"이라며 "다만 상반기까지는 교역조건(반도체값 및 유가)의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워 체감경기가 좋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도체값은 하이닉스반도체의 D램사업 매각 등 세계 반도체 업계의 개편이 마무리돼야 올라갈 것이며, 국제유가도 산유국들이 올 1월부터 감산하면 배럴당 10달러대로 내려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반기에 들어서면 단기적이긴 해도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의 영향으로 내수가 늘어나면서 체감경기도 빠른 속도로 회복돼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률을 이룰 수도 있다. 지난해 말 나온 11월 중 산업활동동향은 이같은 전망을 밝게 한다. 2000년 11월부터 경제가 갑자기 나빠진 탓도 있지만 지난해 11월 설비투자가 13개월 만에 증가세로 돌아서는 등 산업생산 관련 지표가 좋게 나왔기 때문이다.

◇ 나라 안팎 변수 많아=경제가 정부의 바람대로 좋아지려면 국내외 여건이 뒷받침돼야 한다. 가장 큰 관건은 미국 경제가 언제부터 회복되느냐다. 반테러 전쟁이 어느 선에서 마무리될지도 중요한 변수다. 이라크 등 중동 지역으로 확산되면 국제유가가 오르는 등 파장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엔화 가치의 하락 움직임도 일본과 경쟁 관계인 전기전자.석유화학.선박.자동차 분야 수출에 부담이다.

LG경제연구원 오문석 선임연구원은 "상반기에 달러당 엔화 환율이 1백35엔까지 높아질 수 있다"며 "미국 경제가 살아나 일본의 수출이 회복되면 어느 정도 안정되겠지만 엔저 추세는 상당기간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7~10%를 유지해온 20대 청년실업 문제는 일시적 현상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가 됐다. KDI 유경준 연구위원은 "당장 일자리를 주는 단기 정책도 필요하지만 법정퇴직금 제도를 개선하는 것과 같은 노동시장 자체를 바꾸는 정책도 함께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정치 외풍(外風)최소화해야=정부는 올해 경제운용 계획에서 '정도와 원칙'에 입각한 경제정책을 펼칠 것임을 선언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도 "경제에는 임기가 없다"고 강조했다. 지방선거(6월)와 국회의원 보궐선거(8월), 대통령 선거(12월)등 줄줄이 이어질 선거와 정치일정을 의식한 발언이다.

이같이 각종 선거가 몰린 해에 경제논리를 무시한 선심성 정책이 나올 수 있음은 물론 여야나 이익단체간 다툼에 밀려 필요한 정책의 시기를 놓치거나 아예 정책 자체를 펴지 못할 수 있다. 특히 부실기업 처리와 노사관계 등에서 이런 상황이 빚어질 소지가 크다.

기업들이 신규사업 진출과 설비투자를 망설이는 것도 정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경제의 불확실성은 줄이도록 문제 기업을 가급적 빨리 처리하고 은행 민영화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송상훈.나현철 기자 mod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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