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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 드라마 보는 남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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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양성희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주목할 새로운 키워드는 ‘아빠’와 ‘군’이다. MBC ‘아빠 어디가’와 tvN ‘푸른 거탑’. 그간 TV에서 즐겨 다뤄지지 않았던 ‘남성적’ 소재들을 내걸어 약진하고 있다.

 ‘아빠 어디가’는 남자 스타 5명이 6~9세의 자녀들과 함께 야외로 나들이를 떠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직접 음식도 하고, 아이들을 씻기고 재운다.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이 인기몰이의 큰 요인이지만, 아빠의 모습도 흥미롭다. 단 며칠이지만 엄마의 영역으로 치부돼온 육아에 도전해 아이들과 관계 맺는 법을 배워가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가정에서 밀려난 아빠의 제자리 찾기, 젊은 아빠상 제시라는 의미도 있다.

 ‘푸른 거탑’은 대한민국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군생활을 코믹하게 다룬 패러디 시트콤이다. 코미디의 소재로 간간이 등장했던 군생활의 일상을 보다 본격적으로 다루면서, 지질하고 유치한 등장인물들을 통해 웃음의 폭을 넓혔다. 특히 드라마 ‘하얀 거탑’을 패러디한 제목처럼, 잘 알려진 영화와 드라마, CF 등을 패러디해 남녀 시청자 모두의 반응을 얻어냈다. 공군이 제작해 폭발적인 화제를 낳은 유튜브 영상 ‘레밀리터리블’에 이어 ‘군 콘텐트’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평이다.

 #드라마 속 남성상은 달라진 지 오래다. 가령 똑순이 캔디나 지고지순 순정파는 더 이상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신분의 한계를 딛고 조선 최고의 명의가 탄생하는 과정을 다룬 MBC ‘마의’에서 갖은 역경을 헤쳐나가는 조승우는 ‘대장금’ 이영애의 남성 버전, 남자 캔디다. KBS 일일극 ‘힘내요 미스터킴’의 김동완도 남자 캔디다. 직업부터가 남자 가사도우미에, 여러 아이들을 맡아 키우는 엄마 역할을 한다.

 SBS ‘야왕’의 권상우는 ‘착한 남자’ 송중기에 이어 대표적인 순정남에 올랐다. 불쌍할 정도로 순정을 짓밟히다가 마침내 복수에 나선다. 변심한 연인을 향해 “부셔버릴 거야” 오열했던 ‘청춘의 덫’ 심은하의 남성 버전이다.

 부동의 시청률 1위인 KBS 주말극 ‘내 딸 서영이’ 역시 부성애 코드다. 변호사 딸이 결혼에 방해가 되자 아버지를 부정하지만, 아버지는 헌신적인 사랑으로 딸을 지켜보고 마침내 화해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부산대 임영호 교수는 아예 TV 시청행태에서 전통적 성적 경계가 허물어지는 데 주목했다. ‘멜로 드라마 보는 남자들’이란 논문을 통해 “중년 남성들이 텔레비전 드라마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특히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멜로 드라마를 시청하는 중·장년들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이들은)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이라는 전통적인 젠더 구분을 넘어서 새로운 젠더 취향과 정체성을 재구성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실 속 남녀 성 역할이나 관계가 급격하게 흔들리면서 TV를 둘러싼 남녀의 풍경 또한 날로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양 성 희 문화스포츠 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