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unday] 신중함과 답답함 사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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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호 35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지지율이 44%라는 결과가 나왔다. 대선 당시 득표율 51.6%보다 훨씬 낮다. 이례적이다. 인수위 기간 중에 김영삼 전 대통령은 92%, 노무현 전 대통령은 75%까지 지지율이 오르는 등 역대 대통령들이 이른바 ‘허니문’을 누린 것과는 딴판이다. 그건 아마도 침묵·보안 끝에 나온 인수위의 결과물이 시원찮아서일 거다. 세간에선 청와대와 내각의 주요 요직을 맡을 내정자·후보자들의 전관예우·병역·재테크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조직개편안은 여야 충돌로 난항에 빠졌다.

특이한 것은 이런 상황을 대하는 박 당선인의 태도다. 그의 표정은 지지율과 상관없이 한결같다. 인수위 기간 내내 그랬다. 김용준 인수위원장의 총리 후보자 낙마 이후 아주 잠깐 ‘당선인이 낙심했다’는 얘기가 들려왔지만 곧 평정심을 되찾았다. 지지율이 유례없이 하락하는데도 박 당선인은 특별한 액션을 취하지 않았다. 역대 대통령들이 인기몰이를 했던 것과 확실히 다르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취임 전엔 당선인이 얼굴만 보여줘도 지지율이 오르는데 박 당선인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스스로 ‘정치 쇼’를 자제한 셈”이라고 말했다. 대중적 인기에 휘둘리지 않는 모습으로 트레이드 마크인 ‘원칙과 신뢰’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부모가 흉탄에 쓰러지거나, 자신이 괴한의 칼에 맞거나, 대선 당선의 문턱에서 물러서야 했을 때도 그는 의연했다. 그렇지만 이런 태도는 신중하지만 답답하게 비친다. 취임 후에도 그럴 것 같다는 게 일반적인 예측이다. 야권의 어느 인사는 “민주주의 시대의 대중정치인이라고 보기 힘들다. 자상한 ‘군주’가 되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 같은 시대엔 아무리 현명한 군주일망정 서민 삶을 일일이 굽어살피기는 힘들다”고 꼬집었다.

이런 시각 차는 박 당선인에 대한 지지 여부와는 큰 관계가 없는 것 같다. 국민의 아픈 현실을 제대로 듣고 보고 다독이는 박 당선인의 소통 능력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더 핵심인 것처럼 보인다. 낮은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면 박 당선인은 ‘답답함’이 아니라 ‘신중함’으로 국민에게 다가설 필요가 있다.

당선인의 ‘함구령’ 때문에 역사상 가장 조용했던 이번 인수위에 대해 어느 인사는 “현직 대통령 예우 차원도 있지만 당선인을 찍지 않은 48%를 배려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인사는 “그 사람들이 지금 얼마나 열 받겠나. 당선인이 TV에 나오면 채널을 돌리고 신문에 나오면 신문을 치워버리고 싶을 것이다. 그분들 마음을 이해하면서 묵묵히 일하는 인수위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을 듣고 나니 인수위의 ‘불통’이 어쩌면 ‘배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당선인이 대선 기간에 했던 말처럼 ‘쇼’는 필요없지만, 진정성이 있다면 그 부분은 국민에게 계속 설득할 필요가 있다. 국민 지지가 높아야 그 위에서 박근혜 호(號)가 무사히 항해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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