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과 하나된 새로운 글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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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 혹은 책을 낸다는 것은 불과 얼마 전까지도 소수의 사람들 사이의 배타적 권위였다. 다양한 저자군의 등장과 글쓰기의 저변확대는 인터넷의 보편화와 실용적 지식에 대한 요구가 만들어낸 변화다.

'1인 기업'의 CEO로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등 저술활동을 펴는 구본형,『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의 정찬용 같은 경우 실용지식으로 무장한 대표적 비전문가 필자다.

또 이영도나 이우혁 같은 팬터지 작가들, 통신공간을 통해 유아교육 전문가가 된 서현주 등은 수용자였던 독자가 발신자로 변신한 경우다. 올 초 도올 김용옥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서 큰 화제를 몰고 왔던 '아줌마 논객' 이경숙씨 역시 여기에 포함된다.

도올이 『도덕경』을 첫 문장부터 끝까지 엉터리로 풀이해 대중에게 현란한 지식 자랑을 해왔다고 거침없이 비판한 『노자를 웃긴 남자』(자인) 를 출간하기 전까지 이씨는 'clouds'라는 ID로 글을 쓰던 익명의 사용자였다.

사이버공간에 연재했던 글을 가감없이 담아 '딴지일보풍 문체'라는 비판은 없지 않지만 李씨의 등장에 독자들이 보낸 화답은 주목할 만하다.

학문적 세계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명쾌하고 쉽게 풀어낸 것이다. 독자에서 저자로 탈바꿈한 李씨는 무엇보다 지식인의 엄숙성을 탈피했다는 점에서 대중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

'바람의 딸' 한비야씨 역시 하반기 출판계를 강타한 스타 저자다. 때마침 국내에 불어닥친 중국 붐 속에 출간된 한씨의 『중국견문록』(푸른숲) 은 중국의 경제.사회적 변화에 대해 '한비야가 보고 느낀, 한비야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이 눈여겨 볼 만하다.

한씨는 이 책에서 두발을 땅에 딛고 사는 삶의 방식을 전한다. 입말체로 쓰여진 글과 관념적으로 사고하지 않고 몸으로 느끼고 경험한 바를 실천하는 건강함이야말로 한씨와 독자가 격의없이 소통할 수 있게 만드는 이유다.

20세기 내내 저자는 독자에게 조금은 오만하고 난해한 일방통행 방식으로 지식을 전달했다. 여기서 얻어진 것은 대중을 소외시킨 전문화였다.

반면 21세기에 들어 독자와 저자의 관계는 저자 중심의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향 소통으로 변하고 있다. 그것은 이경숙씨처럼 사이버 공간에서 스스로 저자가 되는 방식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혹은 한비야씨처럼 독자와 저자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행동하는 삶의 철학을 통해 이뤄질 수도 있다.

한미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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