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비전] 감독-선수간 허물없는 대화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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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때까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그는 지난 17일 축구회관에서 있었던 송년 기자회견을 마치고 19일부터 내년 1월 3일까지 크리스마스.신정 휴가에 들어갔다.

회견내용 중 눈길을 끄는 점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나는 신이 아니며, 나의 지도 스타일이나 선수선발 방식 등을 언론이나 협회, 심지어 선수들도 이해 못할 때가 있었지만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팀을 조련했으며 현재는 모두들 나의 코칭 철학을 상당 부분 이해하고 있다', 둘째는 '지난 1년 동안 세계 축구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었다.

히딩크의 기자회견이나 인터뷰 등을 통해 느끼는 것은 한국 축구의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고 나름의 대처도 잘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월드컵까지 남은 기간 준비할 몇 가지 사항에 대해 주문하고 싶다.

최근 한국이 출전했던 네 차례의 월드컵(멕시코.이탈리아.미국.프랑스)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하며 좌절을 거듭했던 가장 큰 원인은 표면적으로는 경기력의 요인인 체력.기술.전술과 지도자의 한계 등이었지만 좀더 세밀히 살피면 선수들의 자신감 결여와 지나친 흥분, 냉철한 판단력 결여였다. 이 문제는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 벨기에,98년 프랑스월드컵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드러났다.

월드컵을 위해 준비했던 전략과 전술, 선수들의 기량은 온데 간데 없고 정신없이 90분 동안 뛰다가 형편없이 망가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한국 축구와 유럽 축구의 실력 차이는 인정하지만 준비한 실력마저 발휘하지 못하고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지곤 했다. 지난 5월 컨페더레이션스컵 때 프랑스,지난 8월 유럽 전지훈련 때 체코에 '히딩크 스코어'란 신조어를 만들며 0-5로 형편없이 망가진(?) 게 오히려 한국 축구의 재발성 무력증을 정확히 진단할 계기가 됐다는 점을 필자는 위안으로 삼았다.

스포츠에서 습관과 버릇은 반복된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 찌꺼기와 같은 현상으로 이를 뜯어고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첫 경기에 약한 점과 강팀만 만나면 주눅드는 현상은 분명 이번 월드컵에서 깨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 꼭 해야 할 숙제가 있다. 히딩크와 선수들간의 격의 없는 커뮤니케이션 채널 확보다. 과거 한국 축구에서 '감독은 신이고 선수는 신을 위해 존재하는 부산물'이었다. 이 잘못된 팀 운영은 위기의 순간에 선수들의 자율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저해하는 암적인 장애로 작용했다.

또 한 가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정보의 공유다. 상대팀의 경기를 분석해도 감독과 코치, 선수간의 해석이 다르면 절대로 승리할 수 없다. 감독이 생각하는 상대팀의 전략과 전술, 선수 평가와 선수들이 보는 눈이 같아야 올바른 정보라 할 수 있다.

조 추첨으로 이미 한국 축구가 가야 할 길은 정해졌다.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촌각을 아껴 지혜를 찾아야 한다.승리는 준비된 자에게만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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