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인상인데…" 외국인들 분노한 이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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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평택항 입국장이 물건을 찾으려는 여행객과 중국 상인 300여 명으로 북새통이다. 평택항 입국장에서는 부족한 화물카트를 차지하기 위한 여행객들의 쟁탈전이 자주 벌어진다. [평택=강정현 기자]

지난 14일 오전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 중국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항을 출발한 교동훼리호(승선 정원 750명)가 부두에 닿았다. 중국인 관광객과 소무역상(보따리상)들이 한꺼번에 몰리자 비좁은 입국장에는 순식간에 긴 줄이 생겨나 발 디딜 틈이 없었다. 1시간 가까이 줄을 서 수속을 끝낸 위더메이(28·여·중국 다롄시)는 “외국인에게 한국의 첫인상을 심어주는 곳인데 수준은 꼭 시골 버스터미널 같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중국으로 떠나는 배를 기다리는 대합실도 마찬가지였다. 승객 수는 700명이 넘었지만 대합실 의자는 100석에 불과하다. 일부 승객은 바닥에 종이박스를 깔고 앉았다. 명색이 ‘국제’ 여객터미널인데도 환전소나 은행 창구 한 곳 없다. 환전을 하려면 근처 사설 환전소까지 10여 분을 걸어나갔다 와야 한다. 공항 출국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휴대전화 로밍서비스 창구는커녕 여행에 필요한 물품을 살 수 있는 상점조차 없다. 대합실 내에는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 한 곳만 있을 뿐이다. 중국인 리치앙(35)은 “장거리 뱃길 여행을 앞두고 멀미가 걱정되어 터미널에서 약을 사려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약국이 없어 황당했다”고 말했다.

 평택항은 인천에 이은 서해의 제2관문이다. 하루 평균 2700명의 내·외국인이 평택항을 통해 입국한다. 이 가운데 절반 가까운 숫자는 중국인들이다. 웨이하이·룽청(榮成)·롄윈(連雲)·르자오(日照) 등 4곳으로 카페리 정기항로가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객 수로는 인천의 절반가량이다.

 하지만 여객터미널 시설은 국제터미널이란 명칭이 무색할 정도다. 김성렬 경기도 행정부지사는 “평택항이 국내에서 가장 성장이 빠른 항구이지만 여객터미널은 창피한 수준”이라며 “중국 관광객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는데 가장 큰 불만은 터미널이 비좁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는 2001년 준공 당시 여객수요 예측을 잘 못한 탓이다. 당시 정부는 터미널의 적정 수용인원을 하루 평균 400명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현재 하루 평균 이용객 수는 그보다 6배가 넘는다.

 여객 부두도 2개 선석에 불과해 3개 항로의 선박이 동시에 접안하는 월·목요일에는 감당하기가 버겁다. 평택항만공사 등이 배 시간이 서로 겹치지 않도록 입·출항 시간을 조정해 문제를 해결하고 있지만 선주들의 불만이 높다. 이런 이유로 2011년 3월 취항해 주 3회 운항했던 국내선 평택~제주 노선 카페리는 10개월 만에 운항을 중단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한 정부는 평택항에 2014년까지 신규 여객부두와 여객터미널을 신설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재정사업이냐 민자사업이냐를 놓고 6년을 허비하면서 공사착공 시기가 2014년으로 미뤄졌다. 평택항만공사 최홍철 사장은 “정부가 인천항에는 1400억원을 지원해 새로운 국제여객터미널을 건설하겠다고 한다”며 “인천항에 대한 관심의 반만이라도 평택항에 보여달라”고 호소했다. 

평택=최모란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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