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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국내 연안서 사라진 전설의 고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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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사진1=고래연구소가 2007년 러시아 사할린 인근 바다에서 촬영한 한국계 귀신고래. 머리를 바다 위로 들어올리는 장면

사진2=머리를 바다 위로 들어올리는 장면(왼쪽)과 꼬리를 흔들며 바다로 들어가는 장면

사진3=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국립자연사박물관에 전시 중인 12m 길이의 한국계 귀신고래 골격. 1912년 울산 장생포에서 수집되어 1914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사진 고래박물관]

로이 앤드루스

일제강점기 남획으로 인해 한반도 연안에서 사라진 전설의 동물 ‘한국계 귀신고래(Korean Gray Whale)’의 골격이 미국에 보관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영화 ‘인디아나존스’의 실제 모델인 미국 고고학자 로이 앤드루스(1884~1960)가 100여 년 전 울산 장생포를 탐험하다 수집해 간 것이다. 그동안 국내 학계에서는 문헌 기록이나 길이 10㎝ 안팎의 작은 뼛조각 이외에 이처럼 온전한 실물로 한국계 귀신고래의 실체를 확인한 적이 없었다.

울산고래박물관은 1912년 장생포 앞바다에서 잡힌 한국계 귀신고래의 골격 2점이 미국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과 뉴욕 자연사박물관에 보존 중인 사실을 확인했다고 17일 밝혔다.

워싱턴에는 몸길이 12m짜리 수컷 귀신고래 몸 전체 골격이 전시 중에 있고, 뉴욕에는 1m(추정) 크기의 수컷 귀신고래 머리뼈와 턱뼈 2개, 견갑골 1개가 수장고에 있다. 이는 한국계 귀신고래라는 이름을 처음 지은 고고학자 앤드루스가 1912년 수집해 1914년 미국으로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앤드루스는 당시 괴물 연구를 위해 울산에 왔으며, 장생포에는 2011년 세워진 그의 흉상이 있다.

 귀신고래 골격의 존재는 울산고래박물관의 박혜린(33·여·프랑스 릴3대학 졸업) 학예연구사가 박물관에 보관 중이던 앤드루스의 연구보고서 ‘태평양 고래에 관한 연구’를 열람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이사실을 보고받은 김두겸 울산 남구청장은 “귀신고래의 뼈를 되돌려받는 방안을 추진해 보겠다”고 말했다.

 귀신고래는 회백색으로 최대 몸길이만 16m(무게 45t)에 육박한다. ‘귀신처럼 신출귀몰한다’고 해 귀신고래란 이름이 붙었다.

10마리씩 철새처럼 무리를 지어 새우나 멸치가 있는 곳을 찾거나 번식을 위해 1만6000~2만㎞ 이상 바다를 오간다. 오호츠크해에서 한반도를 오가는 ‘한국계’ 이외에 ‘캘리포니아계’와 ‘북대서양계’ 등 3종의 귀신고래가 학계에 보고돼 있다. 이 가운데 북대서양계는 18세기에 멸종했고 한국계는 사할린 연안에서만 100여 마리 생존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계 귀신고래는 20세기 초반까지 동해에서 참돌고래와 함께 가장 흔한 고래였다. 선사시대에 새겨진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도 귀신고래 그림이 남아 있다. 1911년부터 33년까지 울산 앞바다에서만 붙잡힌 귀신고래가 1306마리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일본 포경선의 남획으로 국내에선 모습을 감췄다.

 정부는 1962년부터 귀신고래가 다니는 ‘회유해면(廻遊海面)’인 장생포 앞바다를 천연기념물 제126호로 지정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63년 5마리와 77년 2마리의 귀신고래가 이 일대에서 발견됐고 그나마도 기록으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1848점의 고래 관련 자료가 있는 울산고래박물관에도 한반도 연안에서 찍힌 귀신고래 사진은 없다.

귀신고래가 동해안에서 종적을 감추자 사진촬영 등으로 존재를 확인하는 사람에게 포상금을 내걸기도 했다.

81년 월간지 ‘마당’에서 ‘우리나라 바다에서 귀신고래 사진 찍어오면 100만원을 주겠다’며 포상금을 걸었고 2008년에는 국립수산과학원이 포상금을 준다고 발표했으나 아직도 촬영에 성공한 사례는 없다.

울산=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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