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북핵 해결 방향 설정 위해 박 당선인 발언 귀 기울일 것” 스 티븐 해거드 UC샌디에이고 석좌교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10호 04면

같은 국제관계학 학자라도 안보 전문가와 정치경제 전문가는 시각이나 입장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북핵 문제를 바라보는 미·중 학자의 시각

북핵 문제에 대해 안보 전문가들이 하는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접할 기회가 많다. 중앙SUNDAY가 15일 스티븐 해거드 UC샌디에이고 석좌교수를 전화로 인터뷰한 이유는 그가 정치와 경제를 아우르는 시각을 제공할 수 있는 국제정치경제학자이기 때문이다.

해거드 교수는 구조조정·발전론·중남미학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인 석학이며 미국에서 손꼽히는 한국학 전문가다.

해거드 교수가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북한의 식량 위기였다. 그는 역사적·지리적으로 같은 유산을 지니고 출발한 한국과 북한이 한쪽은 번영, 다른 쪽은 정체의 길을 걷게 된 연원을 탐구해 왔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북핵 문제 해결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마감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가.
“데드라인은 없다. 어떤 데드라인이 있다고 미국이 주장한다면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북한의 2006년 10월 핵실험 이래 북한의 핵 위협 속에 살고 있다. (있지도 않은 데드라인에 쫓기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북한의 핵 위협 밑에서 살아갈 전략을 모색하기 시작해야 한다.”

-전략에는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도 포함되나.
“법적인 의미에서 미국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핵확산금지조약은 핵 보유국 수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핵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북한이 마음을 바꿀 때까지 한국과 미국의 이익에 북한이 입힐 수 있는 피해를 제한하는 전략을 고안해야 한다는 뜻이다.”

-‘전략적 인내심(strategic patience)’을 제안한 바 있는데 어떤 뜻인가.
“우선 전략적 인내심이 바람직한 정책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별다른 좋은 대안이 없다. 전략적 인내심의 핵심은 미국이 모든 문제에 대해 대화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확실히 하는 것이다. 단, 전제조건은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다.
전략적 인내심에는 또한 계속적인 대북 제재와 방어적인 군사 조치가 포함된다. 미국과 한국의 이익을 보호하고 북한의 핵능력이 이란 등의 국가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따라서 전략적 인내심은 손 놓고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게 아니다.”

-북한의 속내는 핵을 지렛대로 미국과 대화하고 협상하는 게 아닐까.
“과거에 북한은 비핵화에 대한 반대급부로 미국의 안전보장(security assurance), 북미 수교, 에너지 등의 지원을 받는 것에 관심을 보인 적이 있다. 지금의 북한은 핵능력을 포기할 의사가 없으며 미국의 안전보장에 대한 관심도 없어 보인다. 그래서 나를 비롯해 대부분의 미국 분석가는 비관적이다. 적어도 현재의 북한 정권은 협상할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6자회담은 뭔가 다른 것으로 교체돼야 하는 것은 아닌가.
“일부 분석가는 6자회담과 평화체제(peace regime)를 위한 회담을 창의적으로 결합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유효성을 상실한 6자회담을 평화체제 회담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나는 그런 대체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 핵 위협을 가하고 있는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기 전에는 미국이나 한국이나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현재로서는 6자회담 재개와 더불어 평화체제 협상의 가능성에 대해 논의를 시작하는 게 최선이다.”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새 정부 출범을 앞둔 한국은 유엔 안보리 의장국으로서 매우 흥미로운 위치에 있다. 한국은 사태의 진전을 주도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 여러 면에서 미국은 방향 설정을 위해 한국을 주시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분석가들은 박근혜 당선인의 발언을 깊은 관심을 가지고 경청하고 있다.”

-개혁·개방과 시장경제를 시도한다면 북한도 중국·베트남처럼 고속 성장이 가능할까.
“북한의 성장 잠재력은 엄청나다. 북한 경제는 너무나 왜곡돼 있기 때문에 제한적인 개혁만으로도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김정은이 생각하는 경제개혁은 중국을 포함해 외부로부터 투자를 받는 것이라는 게 밝혀졌다.
그는 다른 의미에서 북한의 정치경제 구조를 개혁하는 데 아무런 관심이 없다.
박근혜 당선인은 북한의 최근 행동이 ‘자멸적’이라고 표현했다. 사실 북한은 미사일과 핵을 개발하는 데 자원을 투입하느라 장기적인 성장에 필요한 민간부문 투자를 그만큼 못하고 있다.
경제에 필요한 자원을 군에 쓰고 있다는 게 북핵 문제의 주요 이슈로 자리 잡고 있다. 북한은 점점 더 불평등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평양은 잘되고 있으나 나라 전체는 아니다. 이것이 북핵 문제에 자리 잡고 있는 매우 중요한 북한의 정치경제적 특질이다.”



스티븐 해거드 1990년대 초반 서울 용산에서 군생활을 했다. UC버클리에서 학부부터 정치학 박사과정까지 마친 후 1999년까지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로 일했다. 주저로는 『주변부 탈출의 경로―신흥산업국에 나타난 성장의 정치학』(1990), 『아시아 금융위기의 정치경제학』(2000), 주요 공저로는 『민주화 이행의 정치경제학』(1995), 『발전, 민주주의, 복지국가』(2000)가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