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소리 포근한 색채로 전달

중앙일보

입력

눈발이 휘날리는 추운 겨울 산 속 깊은 곳, 우리 아이들의 따뜻한 삶의 공간과는 아주 다른 세상에서 봄을 기다리는 한 무리의 너구리 가족이 있다.

시간이 멈춘 듯이 보이는 깊은 산에도 어김없이 도시의 시간과 똑같이 계절의 흐름은 진행된다. 겨울에서 봄으로. 하지만 그 느낌은 역설적으로 더 포근하게 다가온다.

추운 겨울을 참고 견뎌야 화창한 봄을 맞이할 수 있다는 평범한 자연의 순리를 작가와 화가는 아이들에게 강제적으로 주입시키지 않는다. 단지 따뜻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보여줄 뿐이다.

신간 『아기너구리네 봄맞이』는 '권정생 글.송진현 그림'이라는 이름값에 걸맞게 자연과 생명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한 창작 그림동화책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아동문학작가 권씨가 그림책을 만들려는 목적으로 동화를 쓴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송씨는 단색의 연필로 선을 무수하게 쌓아가면서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모습을 잔잔하게 묘사한다. 나아가 겨울의 은백색과 너구리의 황토색, 그리고 새 봄의 연분홍색의 조화를 통해 자연의 미묘한 변화를 포착해 낸다.

어느 겨울 너구리네 가족이 잠들어 있는 산 속 굴. 막내와 언니, 오빠 너구리는 좀처럼 잠을 자지 못한다. 세 남매가 굴 속을 나와 밖을 내다본 순간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후려친다. 용기를 내 밖을 보니 수많은 나무들이 눈보라를 맞으며 추운 겨울을 꿋꿋하게 견디고 있었다. 나무들은 '너희들도 우리처럼 겨울을 이겨낼 줄 알아야 해'라고 조용하지만 힘있게 외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내 이들은 다시 굴 속으로 들어와 엄마너구리 옆에 엎드린다. 봄이 올 때까지 잠을 자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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