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비전] 히딩크를 흔들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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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스 히딩크 감독은 지난 1년간 한국축구를 얼마나 변화시켰는가?

지난 9일 미국과의 경기를 끝으로 올해 공식 일정을 마친 히딩크에 대한 축구계의 평가는 ‘소득이 있었다’ 혹은 ‘기대이하였다’로 엇갈리고 있다.

히딩크가 무엇을 했는지 모른다고 몰아붙이는 일부 전문가까지 있다.그가 단지 외국인 감독이라는 감정에 치우쳐 그의 능력과 노력을 ‘폄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특히 과거 대표팀에 깊게 관여했던 일부 인사들이 “히딩크 축구가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다.색깔이 없다”는 공격을 서슴지 않고 있다.이를 지켜보면서 ‘한국축구 발전의 적은 내부에 있다’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다.

과거 올림픽과 월드컵에서 실패할 때마다 늘 모든 책임은 감독들에게 전가됐다.정작 책임을 질 사람은 지금도 축구협회의 실세로 있지 않은가.

한국축구의 한계는 이미 10여년 전 어린 선수들에 대한 투자와 효율적 관리에 무관심한데 따른 예고된 ‘인재’였다.그런 상황에서 히딩크의 영입은 큰 자극이 됐다.1998년 프랑스월드컵과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16강과 8강의 목표를 이루지 못했고 국내 지도자들의 한계를 절감했기 때문에 히딩크를 데리고 왔다.무엇보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16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히딩크는 대표팀을 맡으면서 고질병이었던 수비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일자백 시스템’을 고집했다.그러자 “한국은 수비가 약하기 때문에 스위퍼 시스템을 써야 한다”,“히딩크는 한국축구를 잘 모른다”는 공격을 받았다.하지만 히딩크는 “세계 축구의 조류를 등지는 행위는 패배를 자초한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일자백 시스템은 미드필드와 공격의 간격을 좁혀주는 기능을 했고 미드필드에서 상대를 압박하는 강도를 높여 경기의 속도를 배가시키는 기능으로 이어졌다.

선수 선발과 활용에 대한 소신도 확고했다.‘멀티 플레이어’라는 생소한 단어를 앞세워 송종국을 중앙 수비수,이천수·최태욱을 최전방 공격수 혹은 미드필더로 각각 활용했다.또 유상철을 수비형 미드필더·스위퍼·스트라이커·윙백 등 모든 포지션에 돌려가며 점검했다.

그 결과 대표팀의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세대교체에 대한 희망을 갖게 했고 젊은 선수들이 대거 주전으로 도약했다.일부 스타 선수들을 선발하지 않을 때마다 소란스러웠지만 그는 타협하지 않았다.김병지·고종수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아무리 유명해도 평가기준에 맞지 않으면 외면하는 고도의 심리전을 전개해 김병지를 거듭나게 했으며 개성 강한 고종수도 재기의 칼을 갈지않을 수 없게 됐다.

이 시점에서 평가한다면 “(히딩크 영입으로)후진성을 벗지 못하던 한국축구가 선진 축구의 조류에 적응할 수있는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축구는 변해야 한다.변화의 중심에는 바로 축구인들이 있다.세계 축구의 추세와 흐름을 살피지 못하는 ‘깜깜한 눈’으로 히딩크를 흔드는 행동은 자제하자.새해 한국축구가 힘차게 새로 태어날 수 있도록 모두 조용히 기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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