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근로기준법』이 못 미치는 직종|그 아래 사람 없더라.|후대하면 간 커져? 무휴의 혹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서양사 시간이다. 『고대 희랍과 로마에 찬란한 예술의 꽃이 핀 것은 모든 지저분한 잡역을 노예에게 맡기고 한가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에…』선생님의 절명이 여기에 이르렀을 때 A군이 손을 번쩍들고 질문ㅎ한다..
『우리집에는 식모가 셋이나 있어요. 하나는 아기를 보고, 둘은 밥하고 빨래하고 하기 때문에 엄마와 누나 다섯명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지요. 엄마는 길게 기른 손톱을 다듬고, 가짜 속눈썹을 붙였다 뗐다 하는데 서너 시간 보내고 나서 계꾼들과 어울려 돌아다니거나 낮잠을 자지요. 누나들은 매일 아무것도 아닌 일로 아귀다툼이나하고 빈둥빈둥거리지요. 이들이 사이좋을 때라고는 남을 흉보고 헐뜯을 때 뿐입니다. 물 한그릇 제손으로 떠 먹는 거 못 봤습니다. 밥만은 제입으로 먹는게 신통할 지경입니다. 이들은 모두 한가한 생활을 누리는데 예술의 꽃이 피는 것은 고사하고 사람이 죽을 지경이니 왠일입니까. 한가해서 예술을 창조한다면 우리나라사람들은 모두 예술품에 파묻혔을겁니다. 서울 사람들은 셋방살이하면서도 식모는 부리니까요.』그의 당당한 항변에 선생님은 얼굴이 붉어져 묵묵히 말이없다. 박봉에도 불구하고 식모를 두고 대중잡지나 뒤적이고 있을 사모님에 생각이 미쳐서일까.
이번에는 B양이 일어서서 항의한다. 『식모 얘기가 나왔으니 저도 하고싶은 얘기가 있어요. 사람위에 사람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고 인권에 대한 말슴을 선생님께서 하셨는데 식모의 인권은 어떻게 됩니까. 일요일도 방학도 퇴근시간도 없이 여러 명의 상전을 모시고 상전이 입을 움직이면 자다가도 일어나 몸을 움직여야하는 식모가 노예와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우리 집은 넉넉하게 사는데도 식몬 월급은 7백원 밖에 안줘요. 너무 돈을 많이 주고 후하게 다루면 간이 커지고 전방지게 돼서 부려 먹을 수 없다고 해요. 사람을 사람 대접하지 않고 부려먹기 좋게 길들 일 것만 생각하는 거예요. 그리고 집안식구 모두가 나는 일이있으면 만만한 식모한테 화풀이하지요. 막내동생을 등이 닳도록 업어서 키운 순이가 나갈 때의 광경을 잊을 수 없어요. 조그만 보릉이에 헌 옷가지를 싸들고 뻐가 휘도록 일해서 모은 돈 5천원을 신문지에 여러 겹 싸가지고 나가는 뒷모습을 보니 너무 가엾어서 막 울었어요.』 선생님은 힙 없이 말한다.
여러분이 어른이 되거든 식모살이 하는 사람이 없는 사회를 이룩하라고.<엽>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