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서 알몸으로 맞는 20대男, 충격 영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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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악마의 승리에 필요한 건 선한 사람들의 수수방관이다.” 미국 뉴저지주 최대 도시 뉴어크 코리 부커 시장이 영국 웅변가 에드문드 버크의 명언을 인용하며 단상을 내리쳤다. 지난 8일(현지시간)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사진)을 보고서다.

 동영상에는 스물한 살짜리 흑인 청년이 겁에 질려 서 있다. 폭력배로 보이는 청년이 옷을 벗으라고 하자 옆에 서 있던 또 다른 폭력배는 대뜸 허리띠를 풀어 준다. 스마트폰으로 이 장면을 찍던 제3의 폭력배는 “좀 씻겨야겠다”며 피해자에게 물세례까지 퍼붓는다. 이후 폭력배는 피해자를 1분30초 동안 허리띠로 매질하며 웃고 떠든다. 심지어 피해자에게 “약육강식의 세상이다”고 소리치게 한다. 폭력배가 매질한 이유는 피해자의 아버지가 이들에게 20달러를 빚졌기 때문이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13일 전했다.

 사건은 지난해 8월 뉴어크시 길거리에서 벌어졌다. 수많은 행인이 이 장면을 지켜봤지만 6개월이 다 되도록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다. 폭력배의 보복이 두려워서였다. 그러다 지난주 누군가 유튜브에 이 동영상을 올리면서 미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범죄 현장을 지켜보고도 쉬쉬하며 덮어 버리는 ‘제노비스(Genovese) 신드롬’을 떠올려서다.

 이번에도 경찰은 동영상을 확인한 뒤 즉각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사건을 목격한 동네 주민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코리 부커 시장이 격분한 건 이 때문이다. 어렵사리 피해자와 범인의 신상을 파악한 경찰은 피의자 3명을 체포했다. 그런데 피해자는 폭력배의 보복이 두려워 다른 도시로 이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2월엔 뉴욕시 지하철에서 한인 동포 한기석씨가 말다툼하던 흑인 남성에게 떠밀려 선로에 떨어졌다가 열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벌어졌다. 당시 역내엔 많은 승객이 있었지만 몸을 피하기 급급해 아무도 한씨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심지어 타블로이드판 뉴욕포스트는 한씨가 열차에 치이기 직전 순간을 담은 사진을 1면에 게재한 뒤 ‘이 남자 곧 죽는다’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정경민 특파원

◆ 제노비스 신드롬 = 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책임감이 분산돼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는 걸 주저하게 된다는 이른바 ‘방관자 효과’ 또는 ‘구경꾼 효과’를 말한다. 1964년 3월 13일 새벽 뉴욕주 퀸스에서 바텐더로 일하던 캐서린 제노비스가 퇴근길에 자신의 아파트 주차장에서 성폭행당하고 살해됐다. 35분간 이어진 범행을 38명의 이웃 사람이 창문을 통해 지켜봤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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