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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연 10만명 소년범, 재활 시스템으로 보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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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기환
사회부문 기자

지난 6일 오후 5시. 창원지방법원 대회의실에선 ‘특별한 졸업식’이 열렸다. 부산국제금융고 창원분교 첫 졸업생 19명의 졸업식이었다. 이들은 2년 전 이 법원에서 절도·폭행 혐의로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소년들. 군 입대자를 제외한 대부분이 대학에 진학하거나 회사에 취업한다. 전문대에 진학하는 졸업생 김진호(19·가명)군은 “나 같은 ‘문제아’에게도 기회를 줘 고맙다. 이런 기분은 태어나서 처음”이라고 말했다.

 소년에게 기회를 준 사람은 창원지법 천종호(48) 부장판사다. 소년재판 전담법관인 천 부장판사는 2011년 3월 직접 이 학교 교장을 만나 분교를 유치했다. 문제아로 낙인찍혀 제대로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소년범들에게 배움을 선물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3년 동안 ‘청소년회복센터’(대안가정) 7곳의 문을 열었고 현재 운영 중이다. ‘소년범들에게 가정을 체험케 해 주자’는 게 설립 취지다. 대안가정엔 이미 소년범 200여 명이 거쳐갔다. 평균 소년범 재범률이 37%인 데 비해 이들의 재범률은 19%로 크게 낮아 주목받고 있다. 천 부장판사는 곧 있을 법관 정기인사에서도 부산지법 소년재판 전담법관을 자원했다. <본지 2월 8일자 14면>

 대안가정에서 만난 봉사자들도 천 부장판사 못지않은 ‘숨은 영웅’이었다. 해군 원사 출신 남편과 어린이집 원장 출신 아내 부부가 그랬다. 이들은 소년범 9명을 위해 매끼 30인분의 밥을 짓고, 3시간마다 빨래를 돌린다고 했다. 설에도 소년들과 떡국을 먹고, 영화를 봤다.

 경찰청에선 소년범이 연 1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하지만 사회에서 이들을 보듬어줄 여력이 부족해 봉사자들의 ‘영웅담’에 기대는 수준이다. 대안가정의 경우 법원으로부터 매달 소년 1인당 월 40만원을 지급받는 게 전부다. 전국 92곳의 ‘쉼터’는 가출 청소년 위주로 운영돼 한계가 있다.

 소년범은 성인 범죄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선진국들은 재범률을 낮추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다. 미국은 갈 곳 없는 소년범을 위한 중간처우소(halfway-house)를, 캐나다는 지역마다 상담센터를 마련했다. 영국엔 기업들이 나서 만든 ‘영 파운데이션(Young Foundation)’이 있다.

영웅들의 노력은 ‘마중물’이 될 수 있다. 소년범 재활은 결국 한두 명의 영웅이 아닌 ‘시스템’으로 해결해야 한다.

김 기 환 사회부문 기자